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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Jul 02. 2021

위생 활동사진 이야기

한국영화 이야기 9.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스페인 독감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수백만 명이 독감에 감염되어 14만 명이 사망했을 정도였다. 스페인 독감의 유행이 사그라질 무렵 3.1 운동이 발발했다. 3.1 운동 발발 직후에는 전국에 천연두가 유행했다. 일제는 전염병을 이유로 조선인들이 한 곳에 모이는 것 자체를 차단하려 했다. 또한 다양한 수단을 이용하여 전염병에 대한 홍보를 강화, 조선인들에게 전염병에 대한 공포를 심어주었다.      


당시 보건과 위생에 관한 사항은 경찰이 담당했다. 조선을 지배하는 입장에서 경찰이 보건과 위생을 담당하는 것은 여러 모로 편리했다. 청소상태를 확인한다는 이유로 경찰들이 집집마다 가옥들을 수색할 수 있었던 것은 덤이었다.      


우미관에서 상영된 위생 활동사진대회 기사(매일신보, 1920.4.28.)


우리의 가옥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어 있다. 이중 여성들의 공간인 안채에는 남자들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다. 독립운동가들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여염집 안채에 숨기도 했다. 경찰들이 아무 집이나 막 들어갈 수 없으니 위생상태 점검 등을 이유로 안채를 뒤지는 명분을 만들었던 것이다.      


일제는 전염병 예방 선전과 같은 활동을 광범하게 시도했다. 우선은 환등을 이용했다. 환등이라는 건 슬라이드 필름을 스크린에 영사하여 교육이나 홍보 등에 활용되는 장치를 말하는데, 사진을 확대해서 보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미 1919년 이전부터 경무국 위생과에서는 환등용 사진들을 각 지방관청으로 보내 이를 선전활동에 이용했다. 그래서 각 지방관청에서는 순회환등대회를 조직하여 각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위생의 중요성 같은 것을 설명하고 필요한 경우 예방접종 같은걸 시행했다. 이 위생환등 행사에는 지방의 의사들이 동원되어 환등을 보여주면서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위생선전만으로는 아무래도 지루했다. 사람들이 잘 모이지도 않다 보니 미끼 같은 게 필요했다. 그래서 연예단체들을 고용하여 이들과 어울려서 위생환등대회를 열기도 했다.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가수들이 노래와 춤을 추고, 배우들은 연극을 공연했던 것이다.     


1919년 하반기부터 영화를 이용한 선전활동이 시작된다.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각 나라에서는 영화가 국민들에 대한 선전과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각 관청에서는 본격적으로 선전활동에 영화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조선총독부 내에 문서의 출납을 맡은 관방 문서과에 활동사진반이 만들어졌다. 이후 공중위생을 담당하던 경무국 위생과에서도 활동사진반이 만들어져 선전활동에 이용되었다. 위생활동을 위해 상영된 영화들은 독일에서 만든 과학영화들이었다. 예컨대 콜레라균이나 장티푸스균을 현미경으로 촬영한 필름을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스크린 가득 각종 병균들이 움직이는 모습과 그런 균에 의해 감염된 사람들의 참혹한 모습 등은 관객들에게 충격을 주기 충분했다. 여기에 의사들이 변사가 되어 영화의 내용을 설명해 주었고 급기야는 전염병 예방 극영화도 만들어지게 된다.      


3천 척 분량의 위생과 종두 선전영화 "생의과"가 1922년 3월 29일 촬영 완료되었다는 기사.(경성일보 1922.4.1.)


총독부에서는 1923년부터 「조선 종두령」을 시행할 계획을 세웠다.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해 특정 연령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예방접종을 시행한 것인데, 이에 앞서 한 해 전인 1922년 소위 위생사상 보급을 위해서 위생 영화라는 것을 만들게 된다. 그때 만들어진 영화가 <생의과>라는 제목의 영화였다. 우리말로 한다면 "삶의 자랑"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내용은 개인위생에 철저하자는 내용이다. 두 명의 여학생의 서로 다른 위생 상태를 보여주고 청결치 못한 여학생은 천연두에 걸려 고생하게 되어 결혼을 약속한 남자에게 버림받게 되고 반대로 위생관념이 투철한 여학생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를 담았다.


이 영화는 1922년 6월에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탑골공원과 지금의 을지로 4가 덕수중학교에서 일반을 상대로 상영되었다. 아무래도 극영화가 각종 균을 촬영하여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재미있게 위생사상을 설명하는데 유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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