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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Aug 16. 2021

조선 연극의 메카 동양극장

한국영화 이야기 16.

서대문 부근에 있었던 기차역이 사라지자 북적거리던 거리는 고요해졌다. 얼마 후 이곳에 새로운 극장이 들어섰다. 극장을 만든 인물은 무용수 배구자였다. 그녀는 이토 히로부미의 애첩으로 알려진 배정자의 조카였다. 바꿔 이야기하면 배구자의 고모가 배정자였던 것이다.     

 

어려서 텐카츠(天勝)라는 일본인 무용단에 입단하여 활약하던 그녀는 단장의 아들과 사랑에 빠지게 되면서 극단에서 퇴출될 위기에 처한다. 마음이 불안하던 배구자는 극단을 탈출하기로 마음 먹는데, 이때 홍순언이 그녀가 극단을 탈출할 수 있게 도왔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배구자와 홍순언은 부부의 연을 맺는다.   

   

조선에 돌아온 그녀는 무용연구소를 세워 학생을 가르치는 한편 가극단을 만들어 일본과 조선을 오가면서 활동하여 큰 인기를 끌게 된다. 이때 잠시 <아리랑>을 만든 나운규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자신의 꿈을 펼칠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극장 설립을 추진한다.      


배구자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여성 무용수가 극장을 세운다는 게 쉽지 않았다. 배구자의 후원인인 고모 배정자가 생존해 있던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일제 경찰은 조선인이 극장을 설립하는 것을 허가해 주지 않았다. 이때 남편 홍순언이 극장이 만들어질 수 있게 꾀를 냈다. 그 방법은 극장 설립허가를 경성극장을 운영하던 와케지마 슈지로의 이름으로 내고 이를 나중에 배구자가 인수하는 것이었다. 와케지마는 일본 우익단체의 경성지부 대표인 인물로 야쿠자 두목이었으며 총독부 관리들과도 아주 밀접한 사이였다. 그렇게 편법으로 극장 설립 허가를 얻은 후 공사를 시작하여 1935년 드디어 극장이 완공된다. 배구자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후 동양극장은 연극 공연으로 유명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우리 흥행 역사에서 중심은 언제나 영화였다. 그런데 동양극장이 만들어지던 1930년대 중반 흥행계에 큰 변화가 생기게 된다. 바로 말하는 영화인 토키 영화가 본격적으로 상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변사가 사라진 것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했다. 필름에 소리가 담겨있다 보니 관객들은 필름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고 시끌벅적한 가운데서 영화를 보던 것이 마치 교회당에서 예배를 보는 것과 같이 엄숙한 분위기에서 영화를 보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극장주의 입장에서는 무성영화보다 훨씬 비싼 필름을 수입해 상영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토키 시대에 무성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그 영화관이 수준이 낮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울의 영화관들은 다투어 토키 영화를 상영했는데 그러다 보니 토키 필름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다. 여기에 관객의 입장에서는 영화가 더 이상 재밌지 않았다. 영화 관람에 흥미를 잃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관객은 줄어들었다.      


동양극장


당시 토키 영화를 생각해 보면 필름에서 나오는 소리는 영어이거나 일본어이고, 필름에 담겨 있는 자막은 일본어 자막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본어를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은 영화를 설명해주는 변사가 사라져 영화의 내용을 알 수 없었다. 극장 측에서는 세 시간이나 되는 프로그램을 영화로 채워 넣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었다. 각 극장들에서는 세 시간의 프로그램 중 일부를 공연으로 채워 넣기 시작했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도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즐거워할 수도 있을 방법을 찾은 것이다.      


동양극장이 만들어질 무렵 영화관들은 전속극단을 두는 식으로 극장을 운영했다. 동양극장도 마찬가지로 영화를 상영하는 것 외에 전속 극단을 두어 공연도 펼쳤다. 그런데 동양극장의 공연이 어느 극장보다 큰 인기를 끌면서 아예 필름 상영을 빼 버리고 연극 전용극장으로 전환해버리게 된다.      


동양극장 공연이 큰 인기를 끈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극장을 운영하던 배구자와 홍순언 부부는 일본의 흥행단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서 극장과 극단 운영에 노하우를 가졌다. 그래서 극장을 만들면서 당시 조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극단인 조선연극사의 단원들을 동양극장 전속 배우로 받아들이고, 인기 있는 희극배우들과 창극 배우들 등을 극장에 모아 이들 단원들을 두 개의 전속극단을 만들어 배치시키게 된다. 그 두 개의 극단은 조선 연극사 출신의 황철이나 심영, 차홍녀와 같은 젊고 인기 있는 배우들이 주축이 된 청춘좌가 하나였고, 무게감 있고 노련한 배우들과 희극배우, 창극 배우들을 망라한 호화선이 다른 하나였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에서 왼쪽부터 황철, 김선초, 차홍녀


이 두 전속극단은 하나의 극단이 서울의 동양극장에서 공연하면 다른 극단은 지방순회를 다니면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연습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공연 중이던 극단의 공연기간이 끝나면 지방에 있던 극단이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레퍼토리를 공연했다. 그런 식으로 두 개의 극단이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서 일 년 내내 연극을 공연하면서 동양극장의 연극은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동양극장 전속 극단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는 1930년대 중후반 시골사람들이 서울구경을 가면 꼭 둘러봐야 할 장소 세 곳 중에 동양극장이 들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참고로 동양극장 연극 구경 말고 다른 두 곳은 창경원에 들러 동물 구경하는 것과 남산에 올라 서울시내를 조망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동양극장의 연극 구경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문화 활동이었다.      


대중들의 사랑을 많이 받던 동양극장에는 스타들도 많았다. 동양극장의 전속 극단인 청춘좌와 호화선 중 인기를 많았던 쪽은 청춘좌였다. 젊은 배우들이 주축이 되고 대중들이 좋아하는 멜로드라마를 주축으로 공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청춘좌 남자 배우 중에서는 황철과 심영이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황철은 조선연극사를 이끌었던 강홍식에 이어 주인공을 도맡기 시작한 인물이었다. 특히 목청이 굵고 맑아서 그의 목소리에 여성 관객들이 녹아내린다고 말할 정도였다. 심영은 영화배우로 활동하던 인물이었는데, 목청은 좋지 못했지만 보다 세밀한 연기에 능숙했다. 어찌 보면 성격배우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둘이 청춘좌의 대표작에서 주역을 도맡았다. 예를 들어 <춘향전>을 상연할 때 황철이 이도령 역을 맡으면 심영은 방자 역을 맡아서 서로 무대에서 주고받는 연기를 능숙하게 해냈다.  

    

북한에서 <리순신 장군>에 출연한 박영신과 황철


황철과 심영이 청춘좌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의 대표라면 여배우는 단연 차홍녀였다. 그녀는 뛰어난 연기력으로 대중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배우였다. 당연히 <춘향전>의 춘향 역은 차홍녀가 맡았다. 특히 마음씨가 비단결처럼 고와서 힘든 사람, 어려운 사람들을 보고서는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동양극장 주변의 거지들 중에서는 차홍녀에게 적선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천사 같은 인물이었다.     

 

동양극장의 얼굴 같은 존재인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가장 먼저 심영이 청춘좌를 떠나 중앙무대라는 극단을 만들어 독립했다. 황철과의 라이벌 관계에서 무게추가 황철에게 쏠리는 것이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양극장을 이끌던 홍순언이 갑자기 죽게 되고 극장 운영자가 새롭게 바뀌게 되자 동양극장의 인기 스타들인 황철과 차홍녀를 비롯해 주축 인물들이 홍순언의 죽음을 계기로 동양극장에서 나와 극단을 새롭게 조직하게 된다. 그 극단이 황철이 주도하던 아랑이라는 극단이었다. 아랑은 일제 말기까지 대표적인 대중 극단으로 사랑받았다.      


슬픈일도 있었다. 아랑이 만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홍녀가 장티푸스에 걸려 갑자기 사망한 것이다. 북선 지역 순회공연을 갔다가 철원에서 장티푸스에 걸린 걸인에게 적선을 했는데 그때 병이 옮았다. 발열이 시작되고 온몸에 발진이 생기고 며칠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떳다. 그녀의 영결식은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던 동양극장에서 열렸다. 영결식이 끝나고 운구가 홍제동 화장터로 향해 갈 때 그 뒤를 동양극장 주변의 거지들이 뒤따라가며 애도를 표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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