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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Aug 17. 2021

배우 김소영의 해방 전후

한국영화 이야기 18.

문예봉이 일본군국주의가 만들어낸 군국의 어머니, 소위 양처현모의 대표적 이미지로 활용되었다면 이와 반대의 이미지의 여배우도 있었다. 바로 스캔들의 여배우 김소영이다.      


김소영은 여학교를 다니던 중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빵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워낙 미모가 출중하다보니 그녀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김유영, 김한 등 영화나 연극하는 사람들은 김소영을 배우로 캐스팅하기 위해 빵가게 들렀고 그렇게 그녀는 배우가 되어 <방아타령>이라는 영화에 출연했다.

      

배우가 된 그녀에게 많은 남성들이 구애를 했다. 선택을 받은 인물은 추민이었다. 그는 배우이자 미술가, 시나리오작가이기도 했다. 둘은 결혼하였고 김소영은 남한산성의 산성마을에 있는 시집에서 살림을 살기 시작했다.      


김소영


카프에서 활동하던 추민은 감옥을 밥 먹듯이 오갔다. 제2차 카프검거 사건으로 복역하다가 감옥에서 나온 추민은 김소영에게 다시 연기를 해보라고 권하였다. 그렇게 스크린 앞에 다시 서게 된 김소영은 1937년 안석영 감독의 <심청>(1937)에서 주인공 역을 맡게 되면서 일약 스타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연기를 더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동양극장 전속 청춘좌에 입단하였고 그 사이 남편 추민은 다시 감옥에 들어갔다.      


추민이 감옥을 오가는 사이 제대로 된 결혼생활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김소영은 최인규 감독의 <국경>(1939)에 출연하던 중 이 영화의 연출자인 최인규의 구애를 받게 된다. 여기에 무용가 조택원까지 김소영에게 구애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김소영은 감옥에 있는 남편 말고도 두 명의 남자에게 구애를 받게 되는 난처한 상황에 빠졌다.      


최인규와 조택원은 김소영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담판을 벌이기로 한다. 이들이 만난 장소는 영화배우 김한이 운영하던 맥시코라는 이름의 다방이었다. 파고다 공원 입구에 있던 그곳은 맥시코의 풍경처럼 하얗게 칠한 건물에 검게 그을린 주전자가 달려있어 이채를 띠었다. 서부영화에서 결투를 하듯 최인규와 조택원이 여기에 모였다. 최인규는 자신이 데리고 있는 영화 제작진들을 몽땅 데리고 왔고 조택원은 자신이랑 운동을 같이하던 유도선수들을 불러왔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이루어진 담판에서 최인규가 물러나게 된다. 당시 조택원은 부인과 이혼한 상태였으나 최인규는 김신재라는 유명 배우의 남편이었다.      


<반도의 봄>에서 김소영과 복혜숙


삼각관계도 아니고 사각관계인, 지금 들어도 충격적인 스캔들이었다. 김소영은 감옥에 있던 추민과 이혼을 하고 조택원과의 결혼을 선택하게 된다. 추민도 자신이 감옥을 들랑날랑하면서 가정을 돌보지 못한 책임이 있기에 김소영의 행복을 빌어주며 이혼에 동의하였다. 김소영을 가운데 두고 벌어진 스캔들은 일약 김소영을 문예봉의 정반대에 있는 인물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했다.      


김소영은 조택원의 친구이기도 한 영화감독 이병일의 작품 <반도의 봄>(1941)에서 주인공 역을 맡기도 했지만 대중의 인기라는 측에 있어서 문예봉의 그것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렇게 해방을 맞고 조택원과 김소영은 미국으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김소영은 정착해 살길 원했고 조택원은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결국 둘은 이혼하였고 고국으로 돌아오려던 조택원은 이승만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입국 불허 조치를 당해 4.19때까지 일본에서 지내게 된다.     


추민은 해방 후 영화운동에 앞장섰다. 조선영화동맹의 서기장을 하던 그는 북한으로 가서 중책을 맡아 활약했다. 1958년 무렵에는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총장까지 올라 북한영화계의 최고 실권자가 되었으나 곧 숙청당해 역사 속에서 지워지게 된다.     


주요 배우들이 독립해 아랑이라는 극단을 세운 1939년 이후 동양극장은 그 이전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지만 여전히 조선 연극의 전당이었다. 1950년대 한국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김승호나 최은희와 같은 배우들이 동양극장 무대를 통해 배우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 해방 이후 영화관으로 이용되던 동양극장은 현대그룹에 인수되었다가 폐관되어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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