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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Aug 18. 2021

우미관과 "명금" 그리고 서상호

한국영화 이야기 19.

1912년 설립된 우미관은 종로2가 관철동에 있었던 최초의 조선인 위주의 영화관이었다.      


우미관은 대정관이나 황금관 같은 일본인 극장과 프로그램이 크게 달랐다. 일본인 극장은 일본에서 제작한 영화들이 프로그램의 중심이었던 반면에 우미관의 주요 프로그램은 서양영화, 이중에서도 할리우드 영화였다.  

  

1910-20년대 일본인 극장의 일본영화의 상영방식은 좀 달랐다. 여러 명의 변사들이 지금의 성우처럼 화면을 보고 지정된 대사를 연기하는 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여성변사도 있었고, 아역 목소리를 내는 소년변사도 있었다. 목소리 연기에도 연기력이 필요했기에 일본인 변사들은 주로 연기를 하던 사람들이 맡아 목소리 연기가 능했다. 반면 조선인 변사들은 하급관리출신들이 많아서 보통 웅변식으로 영화를 설명했다. 설명변사라 불린 이들은 목소리 연기를 펼치기에는 어색할 수 밖에 없었다. 연극변사가 필수적인 일본영화는 조선인 위주의 영화관에서 상영되지 않았다. 조선인 극장에서는 주로 서양영화가 상영되었다.


우미관


1915년 말부터 할리우드 영화가 쏟아져 들어오게 된다.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과 유니버설이라는 회사의 전략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지금의 텔레비전 편성표를 보면 뉴스, 아이들 프로그램, 코미디, 일일드라마, 주말드라마, 사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배치되어있다. 이러한 편성은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던 1910년대 중반에도 그랬다.      


1910-20년대 중반 영화관에 가면 3시간 동안 텔레비전 편성표와 같은 순서대로 영화를 봤다. 그중 관객들이 가장 좋아하던 프로그램 액션, 모험, 미스테리 이런 내용의 연속영화(시리얼)였다. 보통 20-30분정도의 이야기가 한 에피소드가 되고 그 에피소드가 15개 정도가 이어다. 15개의 에피소드를 보통 한 시즌이라고 불렀다. 미드를 보면 시즌제라고 하는데 그 미드의 기원이 된 것이 바로 이 연속영화였다.   


연속영화는 매 에피소드가 끝날 무렵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암시하면서 아슬아슬하게 끝났다. 마치 절벽위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고 해서 클리프행어라고 불렀다. 이는 다음 편을 궁금하게 만들어 관객들이 다음 주에도 영화를 보러 오게 만드는 효과를 냈다. 그러다 보니 연속영화는 당시 극장의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으로 맨 마지막에 편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명금> 포스터


연속영화 중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작품은 1915년에 만들어진 <명금>이었다. 영어 제목은 브로큰 코인, 부러진 동전이란 뜻으로 탐정, 모험영화였다. 부러진 동전 두 개가 맞아야 암호가 풀리고 숨겨진 보물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모험담과 연애이야기가 주요한 내용이었다. 과거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동전을 반으로 잘라서 사랑의 징표로 나눠 갖는 것이 바로 이 영화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영화가 국제적으로 성공하였는데 심지어 유니버설에서 필름 배급 방식을 바꾸었을 정도였다. <명금>이라는 영화가 크게 성공하기 전까지는 유니버설에서는 필름을 판매했다. 그러니까 필름을 구매한 사람이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이걸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명금>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명금> 필름을 가진 사람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몇 년씩 이 영화를 계속 상영하게 되자 이후부터 필름을 판매하는 대신 유니버설과 계약한 극장에 필름을 임대하는 식으로 정책을 바꾸게 된다. 경성에서는 가장 먼저 우미관이 유니버설 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했다.  

   

<명금>에 출연한 배우들도 지금의 헐리우드 스타들처럼 우리 관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박태원의 소설 <5월의 훈풍>을 보면, 경성의 아이들이 명금의 주인공인 프레드릭 백작, 키티 그레이, 로로 이런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노는 장면이 나온다. 소위  “명금놀이”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영화배우들의 흉내를 내며 놀 정도로 <명금>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프레드릭 백작 역의 프랜시스 포드, 키티 그레이 역의 그레이스 커나드, 로로 역의 에디 포로는 국제적인 스타로 등극했다. 그런데 이들 보다 더 인기를 끈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이 명금을 설명한 변사 서상호 였다.     


변사 서상호


서상호는 조선 최초의 스타였다. 어려서 일본에서 살다 와서 헌병경찰 노릇을 했다. 일본어와 조선어를 능통하게 잘하다 보니 변사까지 되었다. 그는 특히 프로그램이 바뀌는 막간공연에 나와서 관객들의 배꼽을 잡게 만드는데 재능을 가졌다. 자전거 클락션을 다리가랑이나 겨드랑이에 끼고 추는 소위 뿡뿡이 춤이라는 걸로 관객들의 혼을 빼놓았다. 영화를 설명 할 때는 굵은 목소리로 연설하듯 열변을 토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서상호가 <명금>을 설명하니 <명금>의 인기는 더더욱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1918년 단성사가 영화관으로 바뀔 때 단성사에서는 우미관의 중요한 인력을 빼갔다. 그때 우미관의 스타 서상호도 단성사에 스카웃 되었다. 서상호를 빼앗긴 우미관은 조선인 극장의 최고봉을 단성사에게 겼고 관객들은 서상호를 보러 우미관이 아닌 단성사로 향했다.     

 

엄청난 인기로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서상호는 아편중독자가 되었다. 더 이상 무대에 설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자 단성사에서는 서상호의 동생 서상필을 변사로 만들어 무대에 세우기도 했다. 서상호는 아편을 사기 위해 절도를 하는 등 계속 문제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출신이라는 이유로 심한 처벌은 면하였다.


마약중독자로 피폐한 삶을 살던 서상호는 파고다공원이나 우미관 같은 곳을 다니면서 구걸을 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 1938년 8월 자신이 전성기를 보낸 우미관 화장실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이미 극장에서는 무성영화시대가 저물고 변사의 목소리가 필요 없는 유성영화시대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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