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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Apr 08. 2022

책방을 열 것인가 말 것인가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3.

계약 날짜는 아내와 함께 갈 수 있는 12월 11일 토요일로 잡았다. 그날 대학 선배인 조경덕 감독 부부가 천안까지 함께 가주었다. 계약을 마치고 부동산 사장님에게 임대하려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한두 달 정도 임대인을 기다려 보고 여의치 않으면 그때 내가 천천히 준비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며칠 후 건물 전면에 임대인을 구한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한편으로는 속 시원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았다.


계약서를 쓰고 건물을 임대하기로 한 후 임대인을 구한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계약서를 쓴 후 선배 부부에게 건물 구경도 시켜줄 겸 그곳에 다시 가 보았다. 어둠이 깔려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첫날보다 주변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확실히 첫 번째 보았을 때 보다 두 번째 방문이 좋았다.


처음 그 건물을 보러 갔을 때 부동산중개업소 직원에게 핸디캡이 있는 건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림지역이라 카페나 음식점 허가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물은 카페를 해야 될 것처럼 지어놓고 허가가 나지 않으니 그간 매매가 될 수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건물에서 바라본 저수지의 풍경은 이 건물을 소유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건물을 보고 나온 우리에게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은 인근에 “쉼”이라는 카페를 가보라고 권했다. 그 카페는 소매업 허가를 받아서 운영되는 곳이며, 콜드브루를 주로 파는데 고객들이 직접 제조해서 마시는 식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쉼”에 들렀다. 커피맛은 특별하지 않았다. 밤이라 주변 풍경은 보이지 않았지만 저수지를 끼고 있는 데다가 매장의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찾을 것 같았다. 이때 카페가 안된다면 분위기 있는 책방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효인 선생님의 저서 『한국 뉴웨이브 영화와 작은 역사』의 발간을 12월 말로 잡아 놓다 보니 이것저것 신경 쓸게 많았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최종본을 인쇄소로 보내고 나니 연말연시가 좀 여유로웠다. 이무렵 여주 산골짜기에 번역서로 거대한 서재를 만들어 놓은 홍두깨 책방을 방문했다. 책방 사장님 내외분과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는 내가 책방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이번뿐이라는 생각이 들다.


연말연시 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천안에 다녀왔고, 포항에 계시는 장인, 장모님께서 천안의 건물을 보러 오시기도 했다.  1월 중순에는 『영화운동의 최전선』의 자료 정리를 돕고 있던 김명우 선생과 건물 열쇠를 받으러 천안을 다녀왔다. 다들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나도 건물에 가면 갈수록 그 공간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임대 문의를 해오는 사람도 없는 듯했다. 책방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창밖의 겨울 들녘을 바라보는 홍성후 선생

페이스북에 책방을 준비한다고 알린 게 1월 15일이었다. 그다음 날 천안 출신인 미술사 연구자 홍성후 선생과 그곳을 다녀왔다. 1월 25일에는 라디오 출연을 마치고 온 이효인 선생님과 천안에서 만나 책방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구상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효인 선생님은 2년 전 다산신도시로 연구소를 이전할 때 사무실 인테리어도 팔 걷고 나서 주셨다.  


인테리어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던 2월 초 중앙대 접경인문학연구단에서 자료집 제작비 지원이 결정되었다. 제작비를 받기 위해서는 을 2월 28일까지 만들어야 했다. 지난 가을부터 준비해온 것이긴 했지만 느긋하게 진행되어 오던 것이라 정신이 없었다.  밀린 원고도 많고 책도 내야 하는데 '내가 왜 책방을 해야 하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이제 내 마음은 임대로 기울었다.  


2월 말 『영화운동의 최전선』 최종 원고를 인쇄소에 보냈다. 3월 초 가제본 한 것을 중앙대로 보냈고 인쇄소에서는 일정이 늘어져 3월 15일에 책이 나왔다. 책이 나오고 나니 천안의 건물을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머리를 들기 시작했다. 나는 부동산 사무실에 임대를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숨고에서 인테리어 업체를 찾기 시작했다.


이렇듯 계약을 한 작년 12월부터 책방을 차리기로 마음먹고 인테리어를 준비하기 시작한 3월 중순까지 매일매일이 번민의 시간이었다. 오늘은 부푼 마음에 책방을 어떻게 꾸밀지를 고민하다가 다음 날이 되면 할 일도 많은데 책방 운영을 어떻게 하냐며 임대인을 기다리고 마음먹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이 3개월이나 계속되었다. 꼭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갈대 같았다. 책방을 오픈하기로 최종 결정하기까지 수십 차례나 생각이 바뀌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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