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테리어 업체와 미팅을 할 때 함께 상담을 해주시겠다던 이효인 선생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지도교수인 정태수 선생님 부부를 천안에 모시고 와서 건물을 보여드리고 식사를 함께 했을 때도 역시 그런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3월 초까지 내 마음은 몇 달은 임차인을 기다려 보자는 것이었다.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봄을 재촉하는 훈풍이 불기 시작하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영화운동의 최전선』의 편집 작업이 끝나자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건물 중정의 병든 소나무에 영양제를 주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천안을 다녀왔다. 어느 날은 아이들과 함께 온가족이, 어느 날은 아내와 단둘이 그곳에 갔다.
소나무와 대나무 작은 연못이 있는 건물 중정
겨울의 서늘함이 가시니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공간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었다. 저수지 낚시터는 고요했다. 잔디가 깔린 마당 벤치에 앉아 바라본 저수지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언제 올지 모를 임차인만 기다리다가는 낡아 가는 건물이 폐가처럼 을씨년스러워질 것 같았다. 조경덕 감독이 사는 양평 연수리의 카페 리틀 포레 사장이 카페 장사는 여름에 벌어서 겨울을 버틴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직 봄이 오기 전인데도 벌써 여름이 온 것처럼 마음이 급했다. 원래 계획대로 내가 직접 운영해야겠다는 마음이 조금씩 커져 갔다.
3월 9일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이후 며칠을 우울증에 걸린 사람처럼 지냈다. 직접 몸을 움직여 뭐라도 해야 5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차인을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직접 운영해야겠다고 마음을 정했다. 책방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인테리어를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견적이라도 받아 봐야 했다.
작년 12월 건물 계약을 하고 숨고를 통해 바닥 인테리어 견적을 받아본 적이 있었다. 잔금일도 많이 남았고 임대를 할지도 몰라 몇 군데 업체와 이야기를 나누다 흐지부지 됐지만 업체에서 적극적으로 상담에 나섰던 게 마음에 들었다. 다시 숨고에 150평 카페 인테리어 견적을 요청했다. 몇 군데에서 상담 요청이 들어왔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테리어의 범위는 벽과 기둥을 정리하고 가벽을 세워 공간을 구분한 뒤 창고를 만들고 바닥을 정리하는 정도이기에 제안을 잘못한 것 같았다. 다시 가벽 세우고 벽을 정리하는 것으로 인테리어 견적을 신청했다.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그중에 가장 평가가 좋은 한 업체와 통화를 하고 현장에 와서 견적을 보기로 했다. 때마침 천안세무서에 제출할 서류도 있었다.
이왕 천안에 내려가는 김에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들을 모시고 가기로 했다. 어르신들은 건물을 둘러보시고 주변 경치가 좋다고 칭찬을 하셨다. 근처에서 식사도 하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 모셔다 드렸다. 그 사이 나는 인테리어 업자를 만나러 갔다. 다시 건물로 갔더니 내 나이보다 조금 어려 보이는 남녀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건물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이들도 저수지 조망이 아름다운 이 건물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불과 한 시간 전에는 건축주에게 연락이 와서 자신의 지인이 건물을 보고 갔다며 임차할지 말지를 며칠 후까지 연락 주겠다고도 했다. 비로소 직접 책방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임차를 원하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하니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한 주만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건축주에게서는 임대에 관한 연락이 없었다. 12월에 계약을 할 때부터 임차인을 찾아 달라 부탁했던 부동산에서도 그간 소식이 없었다. 임대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부동산에 연락해 직영을 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지난주에 건물을 보고 간 인테리어 업자는 일주일이 넘도록 견적을 주지 않았다. 건물의 덩치에 비해 예산이 적다 보니 흥미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렇지 제대로 이야기해주지 않은 것은 불쾌한 일이었다.
결국 일주일간 임대인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허비한 샘이 되었다. 인테리어 업자들과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는데 임대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지 못했다. 이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인테리어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내가 직접 업자를 찾기까지는 공부가 필요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이효인 선생님이 도움을 주신다고 해도 시간이 많이 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