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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Apr 14. 2022

내가 만들려는 책방은?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5.

어려서부터 책이 가득한 공간에 대한 갈망 같은 게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종로서적과 교보문고를 처음 가봤을 때의 신선한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책으로 가득 찬 그 공간은 마치 책의 궁전 같은 느낌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주말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신설동 동대문구립도서관에까지 가서 책을 보고 오기도 했다. 오래된 책과 다양한 종류의 정기간행물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던 곳이었다.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인 책방 노마만리 3층이다. 이곳에 영화 관련 책들을 비치하여 도서관 역할을 할 것이다.


학부시절 학교 도서관에 가면 낡고 오래된 책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책 뒤편에 붙은 도서대출표의 대출자의 학번과 이름을 보면서 이들은 왜 이 책을 빌려 읽었을까 하고 궁금해 한적도 있다. 그때의 기억은 마치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에서 부드러운 햇살이 드리운 서고에서 여학생이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고 있는 남학생을 훔쳐보는 장면처럼 머릿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전공이 연극영화이다 보니 나는 주로 관련 서적들이 모여 있는 예술 코너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은 학과 교수님들이 쓴 책이 있는지 살펴보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쓴 책이 서고에 없다는 것은 대학에서 느끼게 된 실망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보다는 영화 찍는 시간이 길었던 대학시절 도서관은 그런 데로 만족스러운 공간이었다.


대학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영화 공부를 하게 되자 본격적인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참고해야 할 전공 관련 서적이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학교도서관에 읽어야 할 책이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대형서점의 연극, 영화 관련 코너에는 전공 관련 신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대부분 가벼운 교양서 수준의 책들만 있었다. 그건 아마도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 같다. 대학들이 좋은 자료를 구비하는데 인색한 대신 장서수 늘리는 데 치중하다 보니 만들어진 결과다.


이렇듯 대학원에 들어와 영화를 전공하다 보니 막연하게 영화 전문 책방 혹은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마도 읽고 싶은 책을 손쉽게 찾을 수 없다는 아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해 한국영화학회 학술대회 명동 CGV 씨네 라이브러리에서 열렸다. 학술대회 주제가 영화관이어서 아마 그곳을 대관한 것 같다. 발표를 위해 그곳에 처음 갔던 나는 깜짝 놀랐다. 그곳에는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신간 영화서적들을 비롯해 외국의 영화 관련 서적들이 꽤 많이 수집되어 있었고 이용자들은 자유롭게 그것을 열람해 볼 수 있었다. 그날 나는 내가 꿈꾸던 이런 곳이 서울 한복판에 만들어져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마음 한편에서는 내 꿈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생각에 약간의 시기심 같은 것도 느낀 게 사실이다.


책방 노마만리를 준비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가 만들고 싶은 공간은 책방보다는 도서관에 가깝다. 한때 소장하고 있는 책이 늘면서 작은 도서관의 설립을 알아보기도 했다. 까다롭진 않지만 나름의 설립요건이 있고 지자체의 지원금을 받으려면 그러한 요건들을 충실히 이행해야 하는 것 같았다. 여러 가지 번거로움 때문에 작은 도서관 설립은 포기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책방 노마만리는 궁극적으로 영화사 관련 주요 참고자료들이 천장 높은 서가에 빼곡하게 들어서서 이용자들이 마음대로 꺼내 볼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었으면 한다. 언젠가 도쿄의 와세다 대학 연극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그와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책방 노마만리가  와세다 대학 연극 도서관과 비슷한 위상의 연구공간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찾은 곳이 되길 바랄 뿐이다.


내가 꿈꾸는 것과 별개로 공간을 운영하려면 수익을 내야 한다. 책방 노마만리의 오픈을 준비하면서 가장 큰 고민이 바로 그것이다. 많은 동네 책방들이 그러하듯 공간을 카페처럼 이용하면서 부가 수입을 창출하는 것이 공간을 유지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다. 그런 면에서 카페 허가가 나오지 않는 책방을 운영한다는 것은 큰 핸디캡이다. 결국 스터디 카페와 비슷하게 공간 이용료를 받고 간단한 음료를 서비스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입장료는 1만 원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


실제 몇몇 책방들이 입장료를 받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2018년 일본 도쿄 롯폰기에 설립된 분키츠 서점이 그런 쪽으로는 유명하다. 1500엔의 입장료를 받는 곳으로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청담동의 럭셔리 도서관 “소전서림”이 비싼 이용료로 화제가 되었다. 종일권 5만 원 반일권 3만 원의 이용료를 받고 있다. 그 외에도 선릉역 인근의 “최인아 책방”, 이태원의 그래픽 북 전문 책방인 “그래픽” 등 여러 곳의 책방이 입장료를 받고 운영되고 있다. 공간 운영 경비도 적게 들고 이용자들의 부담도 적은 공간을 만드는 게 지금은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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