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6.
책방 노마만리는 1층은 책방, 2층은 갤러리, 3층은 도서관으로 구성될 것이다. 1층 책방의 경우 현관으로 들어서면 왼편 벽에 가로 8m 세로 3m 정도의 붙박이 책장이 설치되어 책방에서 판매되는 책과 굿즈를 전시할 것이다.
책방 노마만리가 입장료를 받는 책방이라고 해서 책을 팔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책을 팔 것인가? 여러 출판사와 거래하며 다량 다종의 책을 파는 것은 원치 않는다. 재고에 대한 부담도 크고 초보 창업자라 일처리도 어수룩하기에 창업 초기에는 일을 줄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적은 수의 책이지만 특색 있는 책을 구비하는 게 중요하다.
개업 초기에는 한상언영화연구소에서 발행한 8권의 책(평양 책방, 문예봉 전, 강홍식 전, 김태진 전, 멜랑꼴리 연남동, 평양 1960, 한국 뉴웨이브 영화와 작은 역사, 영화운동의 최전선)을 할인된 가격으로 상시 판매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헌책방으로 사업자를 내놓았기에 내가 소장한 헌책들도 언제든 매대로 나갈 수 있다. 하지만 아직 헌책을 파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 않다. 지금은 보다 특색 있는 책방으로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책방 창업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자료조사를 해보니 내가 참고할 만한 책방의 모델을 몇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우선 첫 번째 일본의 모리오카 서점처럼 매주 한 권의 책을 선정해 파는 것이다. 특정 책 한 권을 위해 서점을 그 책을 위해 바쳐진 신전처럼 꾸며 책을 파는 이런 식의 방식은 좁은 공간을 하나의 책에 집중함으로써 공간을 보다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서울 서촌에 들어선 “한 권의 서점”이 그런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다. 나도 한때 수천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서들을 이런 식으로 팔아 볼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그때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크지 않았기에 그랬다. 이런 콘셉트의 서점이 갖는 단점은 넓은 공간의 서점에는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내가 고려할 부분은 아니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것은 특정 주제의 책만 파는 서점이다. 역사 관련 서점으로 자리를 잡은 서촌의 “역사 책방”이 대표적이며 최근 이태원에 문을 연 “그래픽”도 판매되는 책을 그래픽 북으로 한정하여 독서가들뿐만 아니라 특색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는 소위 카페 순례자들에게도 주목받고 있다. 천안에도 고양이 관련 책과 굿즈를 파는 "책방 분홍코"가 있다. 이런 식의 책방은 특정 주제의 희귀서를 다량 구비한다면 나름의 경쟁력을 충분히 갖출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책방 노마만리는 연극 영화라는 나의 전공에 맞춰 연극, 영화 전문 서점으로 기획해 보는 것도 생각해 볼 만하다.
세 번째로 독립출판물 위주의 책방을 꾸미는 것이다. 교보문고나 알라딘 같은 대형 서적 유통 망에서 판매되는 정규 출판물이 아닌 독립출판물만을 다루는 서점을 만드는 것도 책방을 특색 있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독립출판물을 다루는 책방이 꽤 많아졌기에 특색 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천안에도 독립출판물 전문서점 "허송세월"이 있다. 이 역시 내가 고려할만한 것은 아니다.
현재 내가 가장 중요하게 고민하고 있는 형태의 책방은 책방 안의 책방이라는 콘셉트의 팝업스토어이다. 2019년 여름, 마포대교 밑에서 열린 “다리 밑 헌책방 축제”에서 인사를 드린 적이 있는 권영숙 선생님이 얼마 전 책방 노마만리에 관한 포스팅에 답글을 다셨다. 여전히 고서점의 꿈을 가지고 있다는 선생님의 댓글이 계속 생각이 났다. 그 댓글을 통해 떠오른 아이디어는 바로 그런 분들에게 자신의 서점을 열어드리는 것이다. 누구든 자신의 장서를 노마만리에 온 손님께 자랑하고 필요치 않은 책은 팔기도 하는 1주일 정도 운영되는 특별한 책방이 노마만리 안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팝업 책방은 10여 권 이상 책을 출간한 소형 출판사들도 자신들의 책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책방 노마만리는 아마 5월 27일 정식으로 문을 열 것이다. 개업 후 당분간은 한상언영화연구소에서 발간된 서적 8권만이 판매될 것이다. 이후 책방 노마만리라는 공간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팝업스토어에 관한 논의를 진행시켜 나갈 것이다.
팝업 스토어에 관심 있는 고서 소장가 혹은 소형 출판사 관계자분들의 연락을 바란다. 논의가 잘 진행되면 여름부터 팝업스토어를 시작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