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12.
책방을 오픈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테리어 사기를 당하는 등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경험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얽힌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책방이 그럴듯하게 만들어질 수 있었다.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북디자이너 이슬옹 선생이다. 한상언영화연구소에서 발간한 “멜랑콜리 연남동”, “한국 뉴웨이브 영화와 작은 역사”, “영화운동의 최전선” 3권의 책을 디자인해 준 이 선생은 네이버에서 “주간도시상점”이라는 이름의 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이 선생의 안목을 믿고 그곳에서 파는 컵과 접시 등 도기류를 구입했다. 손님들이 커피잔이 마음에 든다고 할 때마다 “역시 우리 디자이너 선생님” 이런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5월 말에 결혼을 앞둔 바쁜 와중에도 이 선생은 책방 노마만리의 타이포 디자인을 비롯해 디자인 관련한 다양한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책방 전면에 적혀 있는 스텐실 간판은 허베이 성 운두저촌에 조선의용군이 적어둔 벽 글씨를 이 선생이 세련된 서체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또한 개업 기념 선물로 나눠준 머그컵도 이 선생이 디자인한 것을 업체에서 수정해 만든 것이다. 머그컵 200개는 벌써 다 나가고 없다. 인기가 좋다.
한양대 제자들의 도움도 적지 않았다. 따끈따끈한 박사학위를 받은 “메타버스”의 전문가 정인선 박사는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하는 바쁜 가운데에서도 책방의 인터넷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와이파이를 직접 구매해 설치해 주었다. 현재 책방은 1층부터 3층까지 정 선생이 선물한 와이파이가 펑펑 터지고 있다. 개업선물로 이것보다 좋은 것은 없는 듯하다.
큰일부터 작은 일까지 신경 써서 도움을 주는 남기웅 박사는 책방 오픈일부터 연속 3일간 책방으로 출근해 주었다. 개업 초기 내부도 제대로 정리되어있지 않고 운영도 서툰 어수선하고 어리바리한 가운데서도 시행착오를 함께 하며 책방이 자리 잡을 수 있게 심적 정신적 안정을 주었다. 여기에 더해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으라며 전자레인지를 개업 선물로 보냈다. 남 선생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울 따름이다. 그 외에도 이준엽, 안정윤, 유창연, 유우 등 한양대 출신 제자들은 내가 부탁하는 일이라면 언제든 팔 벗고 나서 주어 고맙다. 책방을 준비하면서 이러저러한 부탁의 전화를 많이 했는데 언제나 싫은 내색 없이 도움을 주었다. 이 친구들과 대학원 수업을 진행할 때 좀 더 열심히, 친절하게 가르쳐 줄 걸 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천안아산역 부근에 거주하고 있는 한신대학교의 심혜경 선생님도 자신의 금쪽같은 시간을 빼서 1일 책방지기로 책방을 지켜주시기에 잠깐잠깐 숨통이 트일 수 있었다. 또한 심 선생님은 책방 화장실에 수건도 필요할 것 같다며 수건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현재 아르바이트생을 두고 있지 않은 상황인지라 미안하지만 심 선생님의 도움은 아마도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영화운동의 최전선” 책 작업을 함께 했던 김명우 선생도 석사논문 작성 중임에도 불구하고 개업을 앞둔 책방에 와서 전시 준비와 행사 준비를 도왔다. 이 역시 고마울 따름이다.
책방을 내면서 심혜경 선생님을 비롯해 이진숙, 이수정, 황영미 선생님 등 여러 선생님들의 누님 같은 넉넉한 마음에 감동을 받고 있다. 책방에 오셔서 격려해주시는 것뿐만 아니라 마치 다들 자기의 일인 양 걱정해 주고 아이디어도 주시고 사람도 불러 매상을 올릴 수 있게 신경 써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당분간 새롭게 뭔가를 할 처지가 못 되지만 책방의 내부 인테리어 정리가 완료되면 유튜브 콘텐츠도 제작하고 전시도 신경 써서 재정비해야 할 것 같다.
그간 한 것도 많지만, 아직 할 일도 많이 남았다.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마다 어디선가 도움을 주는 분들이 나타난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때마다 남양주 사무실에 있는 천수관음도가 떠오른다. 천개의 팔이 달린 관음상을 그린 이 그림은 내가 한양대에 계약직 교수로 임용이 되었을 때 형이 선물해 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도움을 줄 수밖에 없으니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손을 잡으라는 의미를 담아 주었다. 미적으로 대단하거나 금전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뜻이 좋아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있다. 그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변의 많은 지인들의 도움을 받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