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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Jun 17. 2022

단골손님 양양떡볶이 사장님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13.

연 이틀 저녁 식사로 양양떡볶이를 먹고 있다. 그제는 로제 떡볶이, 어제는 까르보나라 떡볶이를 먹었다. 오늘은 오리지널 맛 떡볶이를 먹을 생각이다. 양양떡볶이는 밀키트 형태로 만들어진 식품으로, 냉동된 떡볶이를 마치 라면 끓이듯 봉투 안에 든 떡과 어묵, 스프형태의 양념을 넣어 끓이면 조리가 끝나는 상당히 편리한 방식의 요리이다. 맛 또한 일반적인 떡볶이 집에서 파는 것 이상으로 좋다. 


양양떡볶이 까르보나라 떡볶이(좌), 로제떡볶이(우)


책방에 일주일에 2-3회 정도 찾아 주시는 단골손님이 있다. 책방이 처음 문을 연 날 오신 그분은 저수지 주변을 산책하다가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들른 책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단골이 되었다. 처음 책방을 방문 한 날 그는 한쪽 벽면에 진열된 영화 보도자료들을 보고선 어려서 자신도 전화카드 모양의 영화카렌더를 모았다고 했다. 한때 나도 영화카렌다를 모았기에 반가운 나머지 영화카렌더 수집에 관한 이야기를 좀 나눴다. 그는 <똘이장군>을 비롯해 꽤 많은 수의 카렌더를 모았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다 버렸다면서 그게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말을 했다. <똘이장군>을 극장에서 보았다면 나보다 나이가 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서글서글하고 붙임성이 있는 그는 종종 연인과 함께 책방을 찾아 시간을 보내고 가곤 했다. 보통 일행이 있는 사람들은 주문을 하고 자리에 가서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커피를 내리는 동안 카운터 앞에 서서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커피가 완성되기를 기다려 그때서야 커피를 들고 자리로 가는 것을 보면 책방 주인과의 짧은 대화의 시간을 즐기는 듯하다. 


어느 날 하루 종일 책방을 지키고 있는 나에게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를 물었다. 거의 먹지 않는다고 했더니 자신이 떡볶이 공장을 한다며 다음에 올 때에 나에게 떡볶이를 가져다주겠다고 했다. 어렸을 적 매일매일 100원어치 떡볶이를 사 먹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적이 있는, 떡볶이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나는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고 감사하다는 말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리고는 다음번에 그가 책방에 올 때 가져올 떡볶이를 기다렸다. 


책방 노마만리 전경


드디어 그가 책방에 왔다. 기대했던 떡볶이는 없었다. 아쉬웠다. 그 다음번에 왔을 때에도 빈손이었다. 나는 “사장님, 저번에 떡볶이 주신다고 하셨는데, 잊으셨나 봐요. 주변에 자랑도 하고 엄청 기다리고 있었는데...”라고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그는 깜빡 잊었다며 바로 회사로 전화를 걸어 책방으로 떡볶이를 보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 날이었다.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소포가 하나 배달되어 왔다. 평일에는 손님들이 많지 않은 관계로 손님들만큼이나 택배가 많을 때가 있다. 아무래도 책방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미흡한 것이 많다 보니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주문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택배를 받게 된다. 내가 무엇인가 주문했거나 혹은 아내가 뭔가를 주문해 보냈을 거란 생각으로 소포를 창고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는 퇴근할 때 낮에 받은 택배가 생각나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양양떡볶이 밀키트가 가득 들어있는 게 아닌가. 그날 책방에 온 남기웅 선생과 밖에서 삼겹살을 먹기로 이야기를 해둔 터라 그 떡볶이 밀키트는 우선 냉동고에 넣어 두었다.


다음 날 단골손님인 양양떡볶이 사장님이 책방에 찾아왔다. 나는 어느 때보다도 반갑게 그를 맞았다. 보내주신 떡볶이를 잘 받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오늘 저녁에 바로 먹을 생각이라며 감사를 표했다. 제리치즈케익도 서비스로 하나 드렸다. 그날 그와 동행한 분이 일을 해야 해서 자리를 잡고 조금 길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대학 시절의 흥미로운 이야기, 오랫동안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위기를 맞았던 사업 이야기 등 손님이 없는 평일 저녁에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그리고는 이 카페가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면 한다는 그의 작은 소망도 들었다. 나이가 들어 추억을 먹고 살 텐데 결혼하기로 한 연인과의 추억이 서린 공간이 오랫동안 남아 있고 책방 지기도 그대로 있다면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말씀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이 공간을 오랫동안 잘 가꿔야겠다는 마음이 단단해졌다.


책방 영업이 3주 차에 접어들면서 양양떡볶이 사장님처럼 여러 번 이곳을 찾아주시는 분들이 늘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책방에 세 번째 방문이신 어느 사장님이 일행과 함께 회의를 하러 책방에 오셨다. 단골손님이 하나 둘 생길 때마다 이웃이 하나 둘 느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천안 생활의 즐거움이 하나 둘 느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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