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철이 되면 저수지의 물이 논으로 흘러들어 저수지 수위가 낮아진다. 저수지 물이 바닥을 드러내면 강태공들로 붐비던 낚시터도 한산해진다. 수위가 낮으면 큰 고기들이 잡히지 않고 잡은 물고기를 들어 올리는 것 또한 쉽지 않기에 그런 것 같다.
봄 가뭄이 길어서인지 6월 말까지도 저수지 수위는 바닥이었다. 그러다가 장맛비가 오기 시작하자 낚시터가 다시 붐비기 시작했다. 지금은 삼복의 날씨에도 주말이면 낚시터는 낚시꾼들로 가득 찬다.
책방 노마만리에서 본 마정저수지
마정낚시터를 운영하고 계신 사장님은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출신이고 사모님은 경기도 의정부시 출신이다. 포천 송우리나 의정부는 내가 살고 있는 남양주와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낯선 충청도 땅에서 경기도 출신 이웃을 만나게 되니 고향 선배를 만난 것처럼 얼마나 반가운지 모르겠다.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까지 잠깐잠깐 공사 현장을 왔다 갔다 했을 뿐 천안에는 몇 번 들르지 않았다. 그래서 낚시터 사장님과 인사가 늦었다. 인테리어 업자가 도망가서 내가 오픈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몰라 낚시터 관리소로 찾아가 처음 인사를 드렸다. 거대한 저수지를 관리하고 있는 낚시터 사장님은쓰레기를 폐기물 처리 업체에 맡기고 있다고 했다. 인근 전원주택 3동에서도 낚시터에 약간의 돈을 내고 쓰레기 처리를 함께하고 있다기에 아무래도 우리는 가게이다 보니 주택보다 조금 더 내겠다고 말씀드렸다.
낚시터 사장님과 처음 인사하면서 내가 영화 연구자라고 말씀드리니 자신도 젊은 시절 영화판에 잠깐 있었다고 하셨다. 고향 말고도 또 다른 접점이 생긴 것이다. 잘 생긴 외모이시기에 배우를 하셨냐고 물었더니 1985년 김시현 감독이 연출한 “밤을 벗기는 독장미”를 비롯해 몇몇 영화의 지입차 운전을 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가득한 영화판을 기웃거리다 보니 눈만 높아지고, 이러다가 안 되겠다 생각하고 영화판을 떠나 양주에서 자동차 관련 공장을 하시다가 원청업체가 천안으로 옮기면서 함께 내려왔다가 공장 대신 낚시터를 시작한 지 25년째라고 한다. 책방 옆 편의점은 낚시터 사장님의 자제분이 운영하고 있는데 그는 프라모델 전문가이기도 하다.
마정낚시터(좌)와 영화 "밤을 벗기는 독장미" 신문광고(우)
지금은 마정공단도 들어서고 전원주택도 꽤 있어서 제법 차도 많이 다니지만 낚시터 사장님이 처음 낚시터를 운영하실 때만 해도 비포장 도로에 수박밭과 축사, 그리고 일부 원주민 정도만 사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고 한다. 집배원 아저씨 말에 의하면 10년 전 마정저수지 주변은 축사 2동과 마정낚시터 정도만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은 낚시터 사장님이라고.
낚시터 사장님은 책방을 오픈하기도 전에 가장 먼저 개업 축하 화분을 보내셨다. “다정한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보낸 화분에는 들숨 날숨에 돈이 들어오라는 식의, 부자가 되라는 말씀이 적혀 있다. 아직 돈은 벌고 있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잘 될 거라는 믿음을 주는 이 화분은 2층 한쪽 모퉁이에 세워져 있다.
책방을 운영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그간 책방 손님의 수는 극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이 상황을 잘 알고 계신 낚시터 사장님은 쓰레기 처리 비용을 주택과 마찬가지의 가격으로 깎아주셨다. 이뿐만 아니라 가끔씩 노마만리에 손님들을 몰고 오셔서 커피 매상을 올려주시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가뭄에 단비 같은 고마운 이웃이라는 생각이 드는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