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15.
책방 문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니 아마도 6월 초쯤이었을 것 같다. 어느 손님이 책방을 유심히 둘러보더니 말을 걸어왔다. 브런치에 쓴 “책방 노마만리 이야기”를 읽었다며 3층은 인테리어가 마무리가 안 된 것 같은데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 하는 천안문화도시 공간스위치 사업이란 게 있으니 지원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화 활동을 위한 운영비를 지원해 주는 이 프로그램에는 공간 개선비용도 포함되어 있으니 사업비를 받아 미비한 인테리어를 마무리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닌가. 천안에 온 지 한 달도 안 되어 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사업을 제안해 주신 분에게는 크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으나 사업에 지원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천안에 살면서 책방 운영에 큰 도움을 주고 계신 심혜경 선생님께 이 사업에 대해 말씀드렸다. 심 선생님은 지원비를 받아 단기 인력을 운용할 수 있다면 내가 조금은 여유롭게 책방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지원해 보길 권하였다. 나는 심 선생님의 의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우선 책방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매년 연구재단의 연구계획서를 작성해온지라 계획서 작성은 문제가 아니었다. 제안 사항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은 귀찮기는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 자신 있는 부분이었다. 진짜 문제는 지원금을 받게 되어 집행 규정에 맞춰 돈을 쓰는 것이었다. 회계처리를 담당할 연구보조원이 없으니 관련한 모든 사무가 내 몫이 될 게 뻔한 일이었다. 그런 번거로운 일을 기꺼이 할 만큼 지원금을 받아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하는 것이 맞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어차피 책방을 내기로 마음먹고 나서 독서모임도 하고 영화모임도 할 계획이었는데 그런 비용을 내 돈이 아닌 공적 지원금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회계 처리의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도 도전해 볼만한 사업이었다.
사업 제안 마감을 얼마 남기지 않고 제안서 작성을 시작했다. 우선 책방에서 하고 싶은 프로그램들을 구상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꼽아 두었다. 이효인 선생님을 비롯해, 이수정, 이진숙, 심혜경 선생님 등 지인들이 자발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영화운동의 최전선”과 관련해 한국독립영화를 주제로 5개의 강좌를 생각했다. 그리고 김종원 선생님 회고록 발간을 기회 삼아 한국의 영화평론과 영화잡지를 살펴보는 강좌도 생각했다. 책방 중정의 이끼 정원에서 김종원 선생님이 쓴 시를 김 선생님의 지인들이 낭송하는 시낭송회를 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6월 13일 제안 마감일에 맞춰 제안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6월 21일 천안시 창조두드림센터 7층에서 제안 사업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이 잡혔다. 사업을 제안한 사람들의 리스트를 보니 내 제안서에만 제목이 빠져있었다. 제안서를 받은 분이 검토 후 알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정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심정으로 사업제안 설명회에 나갔다. 15년간 대학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었기에 프레젠테이션은 누구보다 잘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우리 사업의 이름을 “천안, 영화를 읽다”로 정해 알려주었다.
제안 발표가 있고 며칠 후인 6월 24일에 최종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결과를 들었을 때 박사를 받고 처음 연구재단에서 “해외 포닥”에 선정되었을 때처럼 기분이 좋았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 축하를 받았다. 하지만 그 기쁨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이제부터 돈을 어떻게 규정에 맞게 써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규정이 까다로운 공간 개선 비용은 아예 쓰지 않기로 마음먹고 이를 대신해 강좌를 더 늘리는 식으로 사업계획서를 수정했다. 김종원 선생님의 시집 발간 시낭송회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없던 것으로 했다.
제안 사업에 대한 검토 후 이제 프로그램을 구체화하고 강사도 구해야 했다. 사업 담당 기관인 충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에서는 사업 종료 후 발생할 문제들에 대비해 사업비용에 대한 검토 자리를 만들었다. 검토 자리에 다녀온 후 스트레스가 늘었다. 사업을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협약 후에는 돈을 제대로 쓰는 법을 배워야 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평일에 책방에 오는 손님들이 많지 않기에 e나라도움 운용 교육을 들을 수 있었다. 차근차근 강좌를 준비하고 있지만 혼자 하는 일이라 쉽지 만은 않다. 결국 남기웅 선생과 김명우 선생에게 SOS를 쳤다.
“나 좀 도와줘야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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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노마만리의 강좌 광고]
[2022 천안문화도시 공간스위치 선정 프로그램]
천안, 영화를 읽다!
첫 번째 강좌 : 한국 독립영화의 오늘과 내일!
장소 : 책방 노마만리(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마정리 312-1)
일시 : 8.12.~9.16. 매주 금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프로그램
8.12. / 한상언(노마만리 대표) / 한국 독립영화의 기원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영화
8.19. / 이효인(전 한국영상자료원 원장/경희대 교수) / 코리안 뉴웨이브와 한국 독립영화
8.26. / 이진숙(영화사 하얼빈 대표 / 영화“밀정”제작자) / 독립영화 제작기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그리고
9.2. / 문관규(한국영화학회 회장 / 부산대 교수) / 2000년대 단편 독립영화의 작가들
9.16. / 이수정(영화감독), 심혜경(한신대 교수) / 독립영화감독 이수정과의 대화 : 깔깔깔 희망버스를 타고 온 재춘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