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영화 이야기 15. 불후의 고전적 명작 <한 자위단원의 운명>
북한 영화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불후의 고전적 명작은 정말 중요하다.
김정일이 주도하여 1960년대 후반부터 만들어지는 불후의 고전적 명작 영화로는 <피바다>가 가장 먼저이고 이어 <한 자위단원의 운명> 다음으로 <꽃파는 처녀>가 만들어졌다. 이 작품 모두 1930년대 김일성의 항일유격투쟁 시절 창작되었다고 한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는 작품은 그리고 있는 대상에 차이가 있다. <피바다>의 경우 혁명가를 키워내는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으며, <한 자위단원의 운명>은 유격대원으로 참여하게 되는 청년의 각성 과정을 주요한 이야기로 다룬다. 이후에 만들어지는 <꽃 파는 처녀>는 꽃분이와 이쁜이로 대표되는 가족, 더 나아가 민족이나 조국과 같은 유격대원들이 지켜야할 대상을 그리고 있다. 영화가 주목하고 있는 대상에 약간의 차이를 둔 것이다.
영화는 주인공 갑룡(엄길선 분)이가 친구들과 함께 산 너머로 가서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금순(성혜림 분)이 있다. 돈을 벌어온 갑룡이가 결혼을 준비 중이던 때 일본인들이 조선인 청년들을 자위단에 편입시키려 마을로 온다. 자위단은 군대나 경찰과 같은 공권력이 아닌, 민간인으로 조직된 말 그대로 민간무장단체로 마을사람들을 감시하고 독립운동가들을 체포하는 등의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는 집단이다. 이들은 항일유격대 토벌에 동원되어 유격대원들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자위단에 들어간 갑룡과 만식, 자위단이 아닌 유격대에 참여하기 위해 도망쳤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온 철삼의 모습을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일제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된 갑룡이 분노하여 자위단에 들어간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일제에 저항하기로 하고 자위단에서 나와 유격대원이 되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 역시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백두산창작단에서 만든 영화이다. 연출은 1960년대 가장 뛰어난 신인 감독으로 꼽히는 최익규가 맡았다. 또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 갑룡 역을 맡은 엄길선은 북한영화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훗날에는 연출가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훗날 불후의 고전적 명작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1979)를 연출했고, 백두산창작단 단장과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총장, 최고인민회의대의원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 중 이 영화는 찾아보기 힘든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갑룡이의 연인인 금순 역으로 나오는 배우가 성혜림이다. 성혜림은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은퇴하였다. 원래 성혜림은 유명한 소설가 리기영의 아들 리평과 결혼한 상태였는데 김정일의 적극적인 구애로 이혼하고 김정일의 부인이 된다. 그러니까 <한 자위단원의 운명>은 김정일의 부인이 등장하는 영화였던 것이다.
김정일의 부인으로 변신한 성혜림을 김일성은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성혜림은 1974년 북한을 떠나게 되었고 북한에서는 1960년대 최고의 스타였던 성혜림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공개하고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까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 불리는 이 영화도 쉽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