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17.
책방을 개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서편으로 기운 태양이 황금색 자태를 뽐내고 있던 시간이었다. 차 한 대가 주차장에 들어와 멈추었다. 미동도 없이 한참을 서 있던 차 안에서 20대의 한 여성이 내려 책방 안으로 들어왔다. 음료를 주문한 그녀는 책방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음료가 나오고 나서는 자리에 앉아 한참이나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손님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때여서 그녀의 존재가 자꾸 신경쓰였다. 문을 닫을 때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양당저수지 인근에 사는 이웃이라며 책방이 개업을 한 건지 안 한 건지 몰라 차를 세워두고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다고 말했다. 또한 동네에 이런 책방이 생겨 너무 좋다며 다음에 또 들르겠다는 말로 인사를 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 어느 일요일 오후, 두 명의 젊은 여성이 책방을 찾았다. 키오스크를 설치해 둔 터라 책방 이용 방법과 결재 방법에 서툰 경우가 많아 보통 옆에서 안내해 주기도 하는데 그들은 이미 이곳을 다녀간 듯 익숙하게 결재를 진행했다. 알고 봤더니 저번에 혼자 왔다가 또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양당저수지 인근에 사는 젊은 손님이었다. 이번에는 평택에 사는 친구까지 데리고 왔다.
책방을 찾는 손님 중 두 번째 방문한 손님이야 말로 정말 반가운 손님이다. 첫 번째 방문에서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두 번째도 왔을 테니 말이다. 다른 말로 책방 안에서의 시간과 내 서비스 모두 손님에게 인정받았다는 것이기에 두 번째 방문한 손님을 보면 마치 단골을 만난 것처럼 흐뭇할 수밖에 없다.
처음 책방을 방문한 평택에서 온 친구는 책방 공간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곳저곳 사진을 찍었다. 두 번째 온 이웃 손님 역시 자신의 추천이 성공했다는 듯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1층 서가에 진열되어 있는 책들 중 흥미로울 만한 것들을 골라 설명해 주었다. 이들은 마치 학생이 수업을 받듯 메모를 해가며 진지한 모습으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이들에게 향후 강좌를 시작하니 꼭 참석해 달라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선 강좌가 시작되면 연락을 하겠다고 명함을 달라고 해서 받았다. 두 번째 온 이웃 손님의 명함을 보니 인근 원예농협에 다니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나 역시 20년 전쯤 농협에 다닌 적이 있었기에 그 명함을 보자 괜히 더 반가웠다. 나는 오래전 농협에 근무했는데 출납을 하다가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는 말을 했고 그녀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출납을 보다가 지금은 예금계로 옮겼다고 했다. 거의 20년 차이가 나긴 하지만 비슷한 일을 했던 공통점이 있기에 보다 친밀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7월 말이 되어 “천안, 영화를 읽다”에 대한 세부 계획이 세워지고 강좌에 참여할 인원을 모으기 위해 손님들께 받아둔 명함의 연락처를 보고 몇몇 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유명한 무용가 최승희와 이름이 같은 농협 직원 그녀에게도 카톡을 보내 참석을 권했다. 그녀가 답을 주면 e나라도움 지원금 집행 카드 발급에 관해서도 물어보려 했는데 답이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며칠 후 최승희 씨에게 뒤늦은 답이 왔다. 나는 카톡에 독서클럽 단톡방을 만들 테니까 들어와 달라고 부탁하고 카드 발급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녀는 혼자 책방을 지키고 있는 나를 배려해 직접 서류를 들고 책방으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미안한 나머지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지만 책방 문을 닫고 은행 일을 볼 수는 없어서 책방으로 와 달라 부탁을 했다. 그녀는 일요일에 찾아오겠다고 했다.
8월 6일 토요일 아침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에서 강연을 하고 다시 천안으로 돌아와 2시에 책방 문을 열었다. 그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주말에도 그리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 아니기에 혼자서도 어렵지 않게 응대를 할 수 있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저녁시간까지 정신없이 음료를 만들었다. 몇몇 분들이 네이버에서 이곳을 추천하기에 왔다고 했다. 네이버를 아무리 검색해 보아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를 노릇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다음날인 일요일까지 이어졌다. 오후 1시를 넘겨 손님들이 밀어닥치기 시작했고 2시쯤엔 주문이 밀려서 혼이 빠져 버릴 것 같았다. 이때 서류에 사인을 받으러 온 최승희 씨가 설거지라도 도와주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호의를 거절했으나 10분이 지나지도 않아 “나 좀 도와주실 수 있어요?”라며 구조의 요청을 보냈다. 그녀는 주방으로 들어와 싱크대 안에 쌓인 컵과 접시를 설거지하고 주문도 받고 서빙까지 도왔다. 종종 친구의 카페에 가서 일을 돕는다는 그녀는 나보다도 더 일머리가 있었다. 그렇게 둘이서 세 시간 동안 정신없이 손님을 치렀다.
책방을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최승희 씨와 카드 발급 서류에 사인을 하기 위해 테이블 앞에 앉았다. 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 농담 삼아 이번 강좌의 반장으로 임명한다고도 했다. 그리고는 이후 책방에서 커피는 무료로 줄 테니 퇴근하면서 언제든 편하게 와서 드시라고 했다. 그녀도 기뻐하며 그러겠다고 했지만 바빠서 그런지 미안해서 그런지 아직 퇴근시간에 책방에 들르지는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