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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Feb 01. 2021

북한의 안중근 전기 영화

북한영화 이야기 1. 엄길선 연출,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있었던 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 중국에서는 안중근 신드롬이 일었다. 안중근 의사의 개인사는 물론 공판 상황까지 중국 신문들은 다투어 보도했다. 1910년대 중국에서는 안중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영웅루』, 『안중근 전』 등이 발간되었으며 희곡 「망국한전기」가 창작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천진의 남개대학에 재학 중이던 주은래와 천진 여자 사범대학에 재학 중이던 등영초가 애국사상을 고취하기 위해 안중근 의사의 연극을 공연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1928년 상해의 조선인들은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기로 한다. 조선에서 영화를 만들던 정기탁은 상해로 건너와 안중근 의사를 주인공으로 한 <애국혼>이라는 시나리오를 썼다. 이를 본 여운형이 대중화백합영편공사를 찾아가 이를 영화로 만들 것을 설득했다. 여운형의 노력으로 중국인 제작자는 영화화를 결정했다. 정기탁 연출로 만들어진 안중근 영화는 중국인 사이에 큰 인기를 얻었다.    

  

1930년대 만주지역의 항일투쟁가들 사이에서도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유격대원들은 오락시간에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했으며 이를 통해 항일의식을 다잡았다. 이때 공연된 작품이 바로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였다.      


1960년대 후반 북한의 문화혁명을 주도했던 김정일은 항일 유격투쟁 시절 공연된 작품들을 발굴하여 이를 영화로 만드는 작업을 이끌었다. 가장 먼저 <피바다>(1969)가 영화로 만들어졌고 이어 <한 자위 단원의 운명>(1970) 그리고 <꽃 파는 처녀>(1971)가 만들어졌다. 이들 작품은 북한영화의 모범으로 제시되었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이라 불렸던 항일 유격투쟁시기 창작된 작품들은 북한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성과를 얻었다. <꽃 파는 처녀>는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1970년대 후반 북한의 새로 나온 1원짜리 지폐에는 이 세 편의 영화가 도안으로 활용되었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을 만들던 백두산 창작단에서는 1970년대 내내 김일성과 김일성 일가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들을 만들어냈다. 1979년 불후의 고전적 명작을 영화로 만드는 작업이 재개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의거 70주년을 기념한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가 바로 그 영화였다.      


<한 자위 단원의 운명>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던 엄길선이 연출한 이 작품은 1930년대 유격대원들 사이에서 공연된 불후의 고전적 명작 중 하나였다. 특히 일제의 간악한 행동과 항일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안중근 의사의 활약은 북한 대중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요인이었다. 1998년 9월 북한영화로는 처음으로 한국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어 남북교류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를 돌아보는 것은 남북이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과도 같다. 북한에서는 항일투쟁의 역사를 돌아보는 혁명영화의 하나로 이후 헤이그 밀사사건을 다룬 <돌아오지 않는 밀사>(1984)로 이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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