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 노마만리 이야기 36.
김대현 선생님 유품인 우표와 엽서, 영화포스터들을 채윤희 선생님께 빌려 6개월 가까이 노마만리에서 전시했다. 12월 새로운 전시를 시작하면서 이전의 전시물들은 철거하였고 빌려올 때 그대로 포장해 보내야 한다.
전시가 풍성해서 포장해야 할 양도 많다. 액자들이 손상되지 않게 뽁뽁이(에어캡)로 한번 감싸고 은박 발포지로 다시 둘러쌌다. 일요일 영업을 끝내고 집에 올라갈 때 전시물을 가지고 올라가려면 손님들이 있음에도 눈치 보지 않고 포장에 열중할수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 지나 3시가 넘었을 때 두 명의 젊은 여성 손님이 노마만리로 들어왔다. 이들은 곧장 카운터로 오지 않고 3층까지 둘러본 후 1층에 자리 잡은 후 음료와 함께 가토쇼콜라를 주문했다.
진한 초콜릿케이크인 가토쇼콜라는 냉동실에서 바로 꺼내 먹어야 맛있다. 그런데 이날 따라 가토쇼콜라가 다 떨어져 쇼케이스 안에 진열해 둔 살짝 녹은 조각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다른 케이크로 주문하시라고 안내했으나 잠깐 고민하던 이들은 얼마 전 먹었던 가토쇼콜라가 맛있었다며 쇼케이스 안에 있는 마지막 조각이라도 드시겠다고 했다. 녹게 되면 아무래도 끈적거리는 질감 때문에 싫어할 수도 있다. 드시기에 불편하면 공짜로 바꿔준다고 했다.
포스터가 들어 있는 큰 액자들은 이미 포장을 마쳤고, 작은 액자들을 포장하고 있었지만 내 신경은 온통 가토쇼콜라를 주문한 그들에게 가 있었다. 얼핏 보니 쇼핑백 안에 귤이 들어 있었다. 한창 대화에 열중하던 이들의 대화가 잠시 끊어졌을 때 그 틈을 이용해 말을 걸었다. "가져오신 귤은 마음대로 드셔도 괜찮습니다." 내가 건넨 말에 주인장과 손님 사이의 묘한 긴장 상태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귤 좀 드실래요?"라며 손님 중 한 명이 귤 2개를 내게 건넸다. 그러면서 가토쇼콜라가 맛있다며 칭찬해주었다.
귤을 좋아하는 나는 그들이 건넨 귤을 받아 먹었다. 잘 익은 귤인 듯 시지 않고 달았다. 귤이 달고 맛있다며 감사를 표했다. 주인장과 손님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손님들은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몇 년 전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며 친구가 되었다고 했다. 이 중 한 명은 노마만리가 문을 열었을 초창기부터 중정이 마음에 들어 가끔씩 찾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에게도 이곳을 소개해주고 싶어 데리고 왔다는데 친구도 아주 마음에 들어 한다고 좋아했다. 이들은 내게 어떻게 해서 천안에 북카페를 내게 됐는지, 그리고 마정저수지가 내려다 한눈에 보이는 이곳을 어떻게 알았는지, 손님도 별로 없는 북카페를 지키고 있는 주인장은 어떤 사람인지 등등 궁금한 것이 많았다.
나는 액자 포장하던 것을 멈추고 아예 이들의 테이블에 합석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내가 출연한 방송(스미다, 다큐인사이트 등등) 등을 소개해주었다. 또한 12월 23일에 새로운 전시가 시작되는 송년파티가 열리니 두 분 모두 와 달라고 초대했다. 한 명은 직장인이라 반차를 내야 가능하지만 다른 한 명(귤을 건네준)은 창업 준비 중이라 시간이 된다고 했다.
이 분이 들고 온 쇼핑백 안에는 귤만 있었던게 아니라 작은 봉투가 몇 묶음이나 들어 있었다. 나는 농담으로 봉투 부치는 부업을 하시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조만간 땅콩과자점을 오픈할 예정인데 상호가 들어간 스탬프를 봉투에 찍으려고 가져 온 것이라고 했다. 가게는 중앙시장에 계약했다고.
내가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쳤다는 이야기를 끝에 창업을 앞둔 손님이 남자 친구랑 이틀 전에 헤어졌다며 구 남자 친구가 독립영화감독이라고도 했다.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해서 어느 학교 출신인지를 물었더니 나와 접점은 없었다.
그 외에 김사량과 노마만리, 박태원, 이기영 등등 문학인들과 관련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간은 어느새 문 닫을 때가 되어버렸다. 몇 시간이나 수다를 떨다 친해진 이들에게 나중에 영화모임 하게 되면 꼭 참가하라고 권했다. 이들도 흔쾌히 찬성했다.
12월 23일 1시에 시작되는 송년회가 기다려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둘의 송년회 참석여부이다. 서울에서 내려온 내 지인들만이 아닌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파티에 함께 하면 그것이야 말로 노마만리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것일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수다를 떨고도 이름을 안 물어봤다. 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