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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언 Mar 01. 2021

평화적 건설시기 경제 건설 영화

북한영화 이야기 17. 북한의 두 번째 예술영화 <용광로>

지난 번 한국영상자료원 영화박물관과 한상언영화연구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전시 “혼돈의 시간 엇갈린 행로”는 월북영화인들과 초창기 북한영화를 알아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전시를 통해 처음 소개되는 흥미로운 영화들이 있었다. 북한의 초기 영화 중 하나인 <용광로>가 바로 그 영화이다.      


<용광로>를 연출한 민정식


북한의 두 번째 예술영화인 <용광로>는 6.25전쟁이 발발하던 당시에 북한의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던 작품이었다. 미군의 노획자료에 이 필름이 들어 있어 연구자 중에는 이미 살펴 본적이 있지만 일반에 알려진 적은 없는 자료이다. 이번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소장 자료를 정리하던 중 국군영화제작소에서 이관된 필름 속에 6.25전쟁 중 노획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영화를 발견한 것이다.      


북한은 6.25전쟁 이전까지 시기를 평화적 건설시기라고 부른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평화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로 이행해 나간다는 점을 강조한 용어이다. 이 시기 북한에서는 일제가 망가트리고 간 기간 시설들을 복구하여 생산 활동을 재개하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었다. 그래서 광복 이후 일본인 기술자들은 우대해 주기도 했다.      


그런 시기를 배경으로 일제가 파괴한 용광로를 복구하기 위해, 엄청난 열기에도 버틸 수 있는 내화벽돌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노동자들과 이를 방해하는 남한의 간첩 세력의 음모를 그린 작품이다. 경제건설과 분단 상황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만든 흥미로운 텍스트이다.     


이 영화의 연출은 민정식이 맡았다. 대구 출신인 민정식은 해방 이후 북한으로 건너와 영화 활동을 시작했다. 동생인 민경식 역시 남한에서 영화감독으로 있으며 <태양의 거리>(1952), <구원의 애정>(1955)과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형제가 비슷한 시기 남북으로 흩어져서 영화감독으로 활동했던 것이다.      


<용광로>에 출연한 문예봉


민정식 감독은 연출자가 부족한 북한에서 드문 전문 연출가였다. 초기에는 북한의 뉴스영화 제작을 책임졌고, 예술영화제작이 시작되자 두 번째 영화의 연출가로 선택되었다. 이 작품에서 특기할 사항으로는 음악가 김순남이 영화음악을 맡았다는 점이다. 김순남은 당시 최고의 작곡가로 손꼽히는 분인데, 첫 번째 영화 <내고향>이 소련음악을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영화음악 창작에 동원된 상황이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로는 남한의 지령을 받는 간첩으로 등장하는 심영이라는 배우가 눈에 띈다. 그는 1930년대 이후 우리 연극계에서 황철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던 최고의 인기 배우였다. 북한으로 와서는 국립영화촬영소의 연기부장으로 있었으며, 이 영화에서는 악역을 맡아 독특하고 개성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내화벽돌을 완성시키는 노동자로 등장하는 박학은 북한의 대표적인 배우이며 1960년부터는 영화감독으로도 활약했다. <꽃파는 처녀>를 연출했던 인물이다. 그밖에 부인 역으로는 문예봉이 등장한다. 아직 문예봉의 시대임을 확인시켜준다.     


이 영화는 국립중앙도서관 5층에 있는 북한자료센터를 이용하면 감상이 가능하다. 북한자료센터에서 미국 자료보관소에 수집되어 있는 자료들을 복사해 와서 관련 연구자들이 연구에 활용할 수 있게 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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