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영화 이야기 18. <끝없어라 나의 희망>(1964)
북한의 가장 중요한 영화로 불후의 고전적 명작을 꼽는다. 그 영화들을 만들기 위해 조직된 단체가 백두산 창작단이다. 백두산 창작단을 처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백인준(白仁俊, 1920-1999)이다. 시인이자 희곡작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 했고 북한의 문학예술부문 행정가로 요직을 두루 역임한 인물이다.
백인준이 본격적으로 북한 문학예술계의 앞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이다. 북한에서는 1953년 남로당계열에 대한 숙청, 1958년부터 1962년까지 종파투쟁이 있었고 이 사태의 끝자락에 북한 문학의 최고 권력자 한설야가 숙청되었다. 그 이후인 1960년대 중반부터 백인준은 문학예술부문의 행정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김정일이 영화부문을 책임지던 시기와 같다. 그러니까 백인준은 김정일 시대의 북한영화의 총책임자라고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백인준이 시나리오를 쓴 작품 중 1964년 제작된 <끝없어라 나의 희망>이란 영화가 있다. 오병초, 김성교가 공동 연출했고, 주인공 박금실 역으로는 한길자가 출연했다. 이 영화는 박금실의 초등학교 시절부터 20대 중반까지, 그러니까 시대적으로는 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약 10년간의 시간을 다룬다. 한길자 배우는 이 영화에서 초등학생에서부터 20대중반에 이르는 역을 무리 없이, 어찌보면 너무 자연스럽게 소화해 냈다.
아주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는 한길자 배우는 마치 <응답하라 1997>에 출연했던 정은지 배우를 처음 보았을 때 같은 느낌을 준다. 연기를 아주 천연덕스럽게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고, 특히 어린이 역까지 어색함 없이 해내는 정말 뛰어난 연기력의 소유자이다. 사실 10대중반에서 20대중반 사이를 연기한다는 것은 성인연기자가 연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전쟁 직후에서 천리마시기가 한창인 1960년대 중반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학교 학생인 박금실은 아주 낙천적이고 활발한 아이이다. 병든 어머니와 둘이 힘들게 살고 있어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했음에도 마을일이든 집안일이든 뭐든 솔선수범하여 앞장선다. 마을에 조합이 생기고 조합에서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축사를 새롭게 만들어 거기서 일할 사람을 뽑는데 다들 싫어하는 축사일도 자원한다. 그러면서 돼지를 키우는데 열과 성의를 다한다.
돼지가 옥수수 사료를 먹고 자라는데 사람이 먹을 것도 없으니 다들 돼지 키우는 걸 탐탁치 않아 한다. 그녀는 들판에 지천으로 있는 풀을 돼지 사료로 이용할 수 있게 연구를 한다. 주변의 도움으로 박금실은 목초를 이용해 화학 사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여 평양에서 이를 발표하게 되고 김일성이 말한 “풀을 고기와 바꿔야 한다.”는 말을 실천한다.
이 영화는 돼지를 키우는데 필수적인 사료를 생산하고 조달하는 방법을 연구한 노동영웅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던 1964년은 천리마시기라 이런 식의 영화들이 많았다.
1960년대 북한영화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천리마 영웅을 찾아서 그들의 생애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작가들이 현지로 파견 나가 노동현장을 둘러보고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던 시기였다. 여기에 노동자들에게 모범이 될 만한, 당의 목표를 성과 있게 실천한 인물들을 발굴해 이들을 노동영웅이라는 이름으로 칭송하던 시기였다. 이 영화도 축산영웅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가져와 만든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