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살고 싶다
이번 휴가는 가서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정말 특별하게 뭘 할 수 없는 곳을 찾아 헤맸다. 어디서 봤는지 청산도에 꼭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남편. 찾아보니 땅 끝까지 가서 배를 타고 약 한 시간을 가야 하는 아주 먼 곳이었다. 여기도 섬인데(여의도..ㅋㅋㅋㅋ) 또 섬을 가야 하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다가 보여준 사진 한 장에 눈빛이 반짝하여 청산도를 가보기로 했다! 그 사진은 청산도의 은하수 사진이었는데 우리도 가면 이런 장관을 볼 수 있는 걸까 기대하게 만들었다.
청산도 가는 길을 찾아보니 해남과 완도가 멀지 않아 두 도시도 들르기로 하였다. 해남에서는 땅끝마을 모노레일을 타고 여기가 최남단이래!! 하며 호들갑을 떨었고 완도에서는 전복이 너무 맛있다!! 하며 소소한 매력을 찾았다. 완도에서 이틀을 보내고 난 뒤 차를 배에 싣고 청산도로 향했다.
뭐랄까. 아무것도 없는 섬. 그야말로 청정지역이다. 차도 별로 없었고 도로는 거의 1차선. 그리고 섬에 편의점이 하나! 빠르게 빠르게인 곳에서 살다가 이곳에 오니 숨통이 트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느릿느릿해도 별 달라질 게 없는 신기한 공간이다. 우리가 묵은 곳은 원더우먼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바로 옆 카페에서는 스콘과 에그타르트를 굽고 위에는 따뜻한 방이 있는 그런 곳이었다. 사장님은 몇 번이나 본 사이처럼 우리를 대해주셨고 맛집도 추천해주셨다.
그리고 고대하던 밤! 도로에 가로등이 없어 멀리 갈 수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컴컴한 마을이었는데, 겁이 나서 멀리는 못 가고 겨우 불빛이 없는 곳을 찾아 고개를 들었다. 들었더니 눈 앞에 쏟아지는 별들.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은하수는 아닐지언정, 살면서 가장 많은 별을 본 하늘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경기도 어느 마을로 소풍을 갔는데 캄캄한 하늘에 별이 너무 많았던 것이 아직도 눈에 훤한데 이제는 ‘별’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달라질 것 같다. 좋은 카메라가 있으면 완벽하게 담았을 텐데 나에게 있는 건 오직 아이폰뿐이라... 겨우겨우 담은 별 사진.
눈에는 훨씬 더 많은 별들이 반짝거렸다. 별자리표 어플을 켜놓고 이리저리 별자리를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꿈같은 시간이었네.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 빛나는 별들. 그리고 한 곳을 계속 보다 보면 더 많은 별들이 보이고 더 반짝거린다. 우리도 그렇지 않을까. 어떤 한 사람을 오래 계속 보다 보면 그 사람은 빛을 내고 있지 않을까? 나도 그러리라 믿고 싶다.
3박 4일 동안 우리가 한 것은 드라이브, 해물 먹기, 별 보기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완벽한 휴가였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꿈에 그리던 장면을 같이 본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뭔가 잘못 살고 있는 느낌이다. 그래서 하루하루 스스로를 더 괴롭히게 되는데 이곳은 그러지 않아도 되는 곳.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다. 청산도 원더우먼 사장님께서 “여긴 벌어도 안 벌어도 늘 없는 곳이야.”라고 하시며 허허 웃으셨다. 더 가지려고 아등바등 애쓰지 말고 큰 숨 한 번 쉬고 편하게 살면 좋겠다. 또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금세 잊겠지만.. 이 시간을 생각하며 다시 천 천 히..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윤동주 <별 헤는 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