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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상은 Sep 07. 2020

가르침은 내 운명

선생의 길

 

 글을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하다가 새로운 강의 준비로 바빠 조금 쉬어갔다. 코로나로 방송도 없어지고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어서 새로운 직업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연관되어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대학생 때 다녔던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연락을 했다. 이제 두려움도 잊었는지 그냥 무턱대고 후배들에게 팁을 전하고 싶다고 했더니 다행히 반응이 너무 좋았다. 요 몇 주간 강의와 특강 준비를 하느라 설렜다. 처음 하는 일이라 사실 걱정도 많이 되지만 실제 수업 청강을 해보니 빨리 학생들을 만나고 싶어 졌다. 내가 학생 때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실제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해주고 싶다. 그래서 학생들이 내 후배가 되면 얼마나 보람찰까?

 

 나도 한 선생님께 스포츠 아나운서 수업을 듣고 몇 년 후에 같은 방송에서 만난 적이 있다. 너무 반가워서 “선생님!!!!”하고 외쳤더니 “선생님은 무슨 선생님이야. 이제 선배라고 불러.”하셨던 기억이 난다. 야구 중계였는데 선배님이 “연상은 아나운서 나와주세요”, 내가 “네 더그아웃에 와있습니다.”라고 받았던 소중한 추억. 이 기억을 학생들과 다시 만들어 보고 싶다.


 그러던 와중에, 중국어를 가르쳤던 중학생 아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중국어는 십수 년간 쌓아온 내 특기인데, 방송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오랫동안 과외를 하기도 했다.- 내가 이사를 하는 바람에 거리가 멀어져 아쉽게도 계속 같이 할 수 없었는데 6개월이 지나도 계속 나만 찾았다며 다시 수업을 맡아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과외를 하게 되면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매주 볼 수 있어 뿌듯하고 해가 지날수록 커가는 모습을 보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가르쳤던 아이도 있고,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성인들까지 참 많은 학생들을 가르쳤다. 아무튼 다시 연락을 받고 깊이 고민을 해보았다. 이동 시간이 조금 부담되었기 때문인데.. 그 아이의 얼굴을 생각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수업을 다시 하기로 시작했더니 어머님께서 “선생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연신 말하셨다. 내가 그렇게 대단한 선생도 아닌데 이렇게 생각해주시니 뭔가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수업 첫날, 아이는 나를 보며 얼굴이 빨개지더니 수업에 적극 참여했다. 수업이 끝난 후 너무 좋아서 콩콩 뛰어다닌다는 이야기를 어머님께 전해 들었다.

똑똑한 중학생 제자

 직업은 따로 있지만, 과외 경험까지 살려본다면 언 12년의 선생 인생을 살고 있다. 대학생 때는 수능 언어와 수능 영어를 주로 가르쳤고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는 같이 일하는 분의 추천으로 중국어 과외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어쨌든 모든 지식과 좋은 영향력만 줄게 학생들아!


+생각해보니 내 동생도 영어 선생이다...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은 것은 일종의 가능성의 저축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저축의 온기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때로 우리의 춥디추운 인생을 서서히 훈훈하게 해준다.
  
무라카미 하루키 ㅡ <채소의 기분, 바다 표범의 키스>

                                                                                                                                                       

 이제 저축한 것을 하나하나 생각해보며 인생을 훈훈하게 만들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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