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상은 Mar 22. 2021

실망하지 마세요. 끝이 아니더라고요.


 지겹도록 말했듯이 나는 야구를 정말 좋아했다. 티비로만 야구를 보다가 현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렇게 몇 해를 야구와 함께 보냈다. 몸은 힘들고 지쳐갔는데 마음은 매 순간이 행복했다. 지금도 친구들이 넌 그때가 가장 바빠 보였는데 .참 즐거워 보였다고 말한다. 그렇게 믿기지 않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졌다. 당시에는 방송사 중계권 계약에 내 운명이 달려있었는데 한 번의 위기를 무사하게 보내고 두 번째 위기도 넘어가는 듯했으나 예기치 않은 일로 야구 아나운서를 그만두게 되었다. 말하자면 치사하고 복잡해서 이유는 생략하기로 한다..


 SNS 계정 자기소개란에 '매일 야구장에 가는 여자'라고 되어있었는데 매일은커녕 이제 야구장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불특정 인물들을 원망하고 미워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좋아했던 일을 한순간에 못하게 돼서 심한 우울감에 빠졌다. 곧 다른 방송을 맡게 되었는데 재밌지도 않고 억지로 가는 기분이었다. 그곳은 스튜디오였는데 특성상 창문과 문이 없었다. 정말 쉬운 내용들이었는데도 입이 바짝바짝 말라서 실수하기 일쑤였고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나기도 했다.

'왜 이러지. 밥을 안 먹어서 그런가.'하고 초콜릿도 왕창 먹어보고 점심부터 고기도 먹어보고 했는데 차도가 없었다. 그냥 컨디션이 안 좋다고 생각하고 '야구 방송을 못하니 이렇게 힘들구나.'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때를 떠올려보면 비행기를 타면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웠고 당장이라도 내리고 싶었다. 내가 내리면 여기 모든 사람이 다 내려야 한다기에 눈을 감고 바다를 생각하며 심호흡을 하며 버텼고, 터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요즘 소위 말하는 공황(?)을 겪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서 어쩌면 그냥 그렇게 흘러가게 되었나 보다. (다행히 지금은 전혀 없다.)


 어쨌든 그렇게 나와 야구의 인연이 끝나는 줄 알았다. 객관적으로 다시 방송국에 입사하는 것은 힘드니까 서서히 인정하게 되었다. 끝이라고.


 그런데 딱 1년 뒤, 야구 인터뷰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격주로 촬영을 해서 예전처럼 매일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현장에 가니 그제야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한이 풀렸다고 할까. 특히 그 해는 유독 바빴는데도 야구장으로 촬영을 가는 것이 힐링이었다. 야구장 촬영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정작 몇 달밖에 방송을 하지 못했지만, 내가 아나운서 준비 시절부터 가장 하고 싶던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공중파 프로그램인데 그 방송사의 아나운서만 출연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다른 방송사에 들어가며 그 바람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PD님께서 직접 전화를 주셔서 한국시리즈 취재를 갈 수 있냐고 물으셨다.

 '정말요?'

기억나는 나의 첫마디.

말도  . 내가 공중파 스포츠 프로그램에 그것도 한국시리즈 취재를? 정말 믿기지 않았다. 사실   다른 일정이 있었는데 양해를 구하고 다른 날로 옮겨가며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스튜디오에 입성하게 된다.    MLB 관한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메이저리그 코너에 출연하게  것이다. 그렇게 호시절을 보냈다.   번의 출연이라도 행복했을 텐데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도 꾸역  버텼다.



 야구와 끝이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는데 돌고 돌아 또 기회가 오더라고요. 올해에도 또 다른 기회가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절망하지 말라는 말을 꼭 하고 싶어요. 버티다 보면 분명히 뭐든 오거든요. 아니 뭐든 와야만 하거든요. 다 몰라줘도 한두 명쯤은 내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아요. 최근 브레이브걸스가 '존버는 승리한다.'라고 하더군요. 몸소 증명시켜주기도 했고요.


우리 절망하지 말고 또 같이 해봐요! 지금 기회가 오고 있으니까요.


 

이전 12화 처음과 마지막을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