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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은 Mar 08. 2020

1. 어쩌다 보니 프리랜서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얼마 전 동창이 나를 소개하기를 이것저것 다하는 애라고 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소속 없이 나라는 존재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건 맞았다. 언제부터 나는 이것저것 다하는,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프리랜서가 되었을까. 

   



쓸모없는 만렙 능력자     

구직활동 대신 효율적인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 우연히 글쓰기를 시작했다. 시급의 배가 되는 돈이 통장에 들어오니 욕심이 났다. 자연스럽게 구직활동 대신 외주를 받아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이른 경험이었지만 어떻게든 이력서에서는 발휘하겠지 싶었던 프리랜서 활동은 대학 졸업 이후부터는 아무짝에 쓸모없었다.      


아무렴 대형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수행해냈을지언정. 사람들이 여전히 자주 보는 유명한 콘텐츠를 내가 기획해냈을지 언정. 커뮤니티에 다수가 퍼다 나른 그 칼럼이 내 글이었을지언정. 언제나 회사와 면접을 보고 나면 나에게 돌아오는 이야기는 “경력이 너무 애매하네요”라는 말과 함께 터무늬 없는 연봉을 산정해줬다. (회사에서 규정하는 인사제도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건 아니었습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이었기 때문에 말하는 겁니다.)

서바이벌에 참가하시겠습니까

그때부터 회사에 대한 기대감은 일체 없어졌다. 솔직히 돈을 적게 줘서가 가장 큰 이유였노라. 인턴만도 못한 월급을 받고 시작하라는 회사들을 보며 좀 많이 실망했다. 그러려고 그동안 그렇게 똥꼬가 빠지도록 고생한 게 아닌데. 네가 아직 고생을 못해서 그런 거라고 비아냥 거리는 대표들도 몇 번 만나보기도 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그런 소리 들으려고 한숨도 못 자고 그렇게 스펙을 쌓아온 게 아니다. 그냥 나는 남들만도 못한 내 스펙에 조금이라도 돈이 될만한 인정을 받고 싶었을 뿐이다. 노력하면 된다는 그 말 하나만 믿고 말이다. 


몇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결국 사막 한가운데에 덜렁 놓이게 됐다. 구직활동에 넌더리가 났다. 정규직을 원할수록 회사마다 내놓는 조건은 암담했다. 이력서를 북북 찢고 방에 틀어박혀 한동안 울었다. 그러나 우는 것도 잠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병행했을 때는 학생이라는 소속감이 그나마 나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졸업장을 받고 나니 '백수'고, 좋게 말해야 '프리랜서'였을 뿐. 금쪽같은 내 귀한 시간들이 돈처럼 보이기 시작한 건 당장 나가는 월세가 나를 재촉하게 만들었다. 내 눈물 모아 돈이 될 수 있다면 마음껏 울었겠지만, 그러기엔 눈물도 사치였다.





프리랜서의 시간은 치킨 한 마리만큼 소중하다

어떤 사람들은 프리랜서는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맞다. 시간은 남아돌지만 그 시간을 돈처럼 여기는 사람들일 뿐이다.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가면 아 내가 오늘도 약 17,000원어치를 길거리에 뿌렸구나 싶어서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남들 일하느라 은행 갈 시간도 없는데 너는 프리 해서 좋겠다는 친구의 카톡에 커피가 코로 나오기도 했다. 얘, 나도 은행 갈 시간 없을 때 많아.라고 쓰려다가 궁색해 보여 조용히 웃곤 했다. 어쨌든 그거 하나 보낼 시간에 입에 넣을 치킨 값이라도 버는 게 나으니까. 황금 같은 내 시간에 감정을 너무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낭비하려거든 번 돈으로 명품 가방을 잔뜩 사고 말리라 라는 의지를 다지며 노트북을 바라보곤 했다. 


출근 없는 삶, 그렇다고 퇴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회사, 저 회사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코로나가 내 존재감을 과감히 지우고 있는 실정이다. 재택근무로 회사들이 근무 형태를 전환했지만 딱히 프리랜서인 내게 큰 변화는 없다. 그저 카페에 덜 갈 뿐이고, 배달 음식이 줄어들었을 뿐이고, 하루 밥벌이는 고사하고 당장 다음 달 생활비 걱정이 늘었을 뿐이다.


사실 밥이야 엄마 집에 가서 훔쳐오면 되지만 숨 쉬면 나가는 공과금, 보험, 휴대폰 요금…. 또 뭐가 있더라 라고 머리를 굴리기 무섭게 일감이 들어온다. 고민할 틈도 없이 무조건 미팅을 가고, 조율을 하고, 또 조율을 하고, 기획안을 쓰고 나면 저녁 12시. 퇴근 시간이 프리랜서에게는 따로 없다. 그저 눈 뜨면 일하고, 눈 감으면 마감이 될 뿐. 그나마 눈이라고 감을 수 있다면 다행이거늘.


프리랜서로 어떻게든 살아남기

현재 시간은 오전 7시 반. 내가 뭘 한다고 했지. 의식의 흐름을 따라 쓰긴 했지만 이렇게 생각이 없어지기도 한다. 하루가 지난지도 모르고 그렇게 꼬박 밤을 새우는 날이 잦아졌다. 하루 온종일 24시간을 투자해도 크게 벌어지는 건 없다. 노력만 쌓일 뿐이다. 그래도 프리랜서로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다. 지난 내 20대가 초라하지 않게 프리랜서로 잘 살아남아 일생일대 최고의 기록 하나 정도는 남기고 싶다. 어쩌다 시작한 프리랜서라면 이제는 어떻게든 살아남은 프리랜서로 기억되고 싶다. 그래서 프리랜서로 간신히, 간간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남는 이 이야기를 꾸준히 쓰고자 한다.


그래서 내가 뭐하는 사람이냐고요? 쓸데없는 능력치 만렙 보유, 24시간 풀가동 가능한 강철 체력의 5년차 프리랜서 에디터 조상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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