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살아남기
"재택근무하니까 얼마나 좋아, 요즘 같은 때에 출근도 안 하고 앉아서 돈 벌면 개이득 아니냐"
개소리. 친구가 하는 말에 과감하게 개소리라고 외쳤다. 아무렴 재택근무가 편하다고 하지만 이건 명백하게 개소리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고용 불안정이 커지고, 일부 회사들은 문을 닫거나 재택근무로 전환했다. 프리랜서에 대한 기회가 넓어질 것으로 어떤 매체들은 떠들곤 했지만 사실 프리랜서의 역량의 차이는 전쟁이 끝났을 때 봐야 안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 달라. 프리랜서에게 코로나 19 사태는 말이 좋아 기회지, 아주 적나라한 표현을 빌려 쓰자면 전쟁용 치트키로 뛰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하면 승리하는 것이고, 못하면 아무 흔적 없이 조용히 패배자가 될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기회의 땅에 놓여 있으니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한다. 하지만 아이템이 자랄 땅이 있어야 어디 비벼라도 보지 않겠습니까. 그 땅이 '폐업'을 달면 끝이거늘.
재난 재해에 대비할 수 있는 업이 실로 몇 개나 될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프리랜서들에게 큰 변화는 없다. 오히려 파리 목숨에 가까운 프리랜서이거늘. 다음날 눈 떴을 때 외주 업체에 작업 중단 명령을 안 받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꾸준히 작품을 연재하거나 저작권료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꽂히는 분들이라면 한시름 덜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리랜서는 '농부'나 다름없다. 매일매일 농장을 가꿔야 하는 농부처럼 지켜야 하는 수량에 맞춰 작업물을 발행하고, 또 기획을 하고, 엎어지면 다시 조정을 하고. 미팅을 하는 등 수십 번의 퇴짜와 승인을 거쳐야 하는 존재들이라면 앞서 말한 상황은 그림의 떡이다.
덤프트럭이 와도, 적군이 내게 무수한 공격을 해도 살아남는 것이 회사 생활이라면 프리랜서는 남이 버린 총알도 주울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에 외주 업체가 문을 닫았다. 더는 의뢰하는 클라이언트가 없기 때문이란다. 언젠간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생활비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업체가 안녕을 고했을 때는 접시물에 코를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시국에 아르바이트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꾸역꾸역 그래도 해야겠다 싶어서 간신히 구해 며칠을 나가봤지만 검수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쫓겨났다.
사회생활만 그래도 꽤 했는데 이런 개꼴을 당하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통장 잔고는 눈물 조차 나지 않게 만들었다. 재난 기금을 서둘러 신청하고, 머리끈을 질끈 묶고 거리로 나갔다. 온갖 포트폴리오와 이력서를 뿌리며 외쳤다. "호외요 호외, 여기! 일 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쓰세요!"
남이 버린 총알은 이럴 때 발견한다. 보석이 따로 없다. 기회의 땅이 아닌 폐허가 된 땅에서 진주를 찾는 셈이다. 귀하디 귀하다. 하지만 몸값은 이럴 때일수록 낮아지는 법. 진주를 줍기 위해서는 자세를 낮춰 가격 조정이 필요하다. 약간의 자존심과 그간 쌓아둔 능력에 대한 비운의 순간이 찾아오지만 그래도 통장 잔고에는 숨통이 틔이는 법이다. 프리랜서는 이렇게 남이 흘린 총알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쓸만한 총알'을 찾아내야 한다.
'갑'과 '을'이 동등하고 깔끔한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위치는 프리랜서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터진 지금은 상의와 하의가 상의하지 않은 관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해외에서 돌아다니면서 일을 해야 하는 분들은 귀국도 안 되는 상황이었고, 당장 행사를 치러야 하는 기획자들은 순식간에 할 일들이 사라졌다. 나도 잔고가 울고 있고.
회의, 상의, 화합, 조정 그리고 마감. 이 단어를 달고 사는 프리랜서들에게 지금은 어쩌면 지옥이다. 앉아서 일하는 일이 개이득이라는 소리는 진정 개소리라는 말이다. 그저 아침에 제시간에 일어나지 않고 지옥철을 타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줄 알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면 프리랜서들에게는 항시 지옥이다.
나를 불쌍히 여겨 내게 일을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 사태에 프리랜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묵묵하게 앉아서 다시 일을 받아올 기회의 땅을 만드는 것 말곤 없다. 전쟁터에서 쓸만한 총알을 줍고, 모아서 장전할 수 있을 때까지. 그날만큼을 간절하게 원하며 '상의'할 수 있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그러니, 부디. 기회의 땅에 농사를 지을 수 있게 이 시국이 무사히 넘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