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살아남기
프리랜서를 시작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가 바로 "어떻게, 왜 시작했나요?"다. 그래서 오늘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고자 한다.
에디터로 일한 지 5년 차. 여전히 글은 어렵고, 쉽지 않다. 그럴듯한 글로 간신히 먹고사는 게 익숙하지 않다. 남들은 글쓰기로 먹고산다는 건 우아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고상하지 못한 자세로 고고한 표정을 지은 채 사는 것이 글쓰기의 삶이다.
나의 경우는 글로 먹고 살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놀랍게도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꿈은 실용학문을 활용하는 일이면 됐다고 생각했다. 기술만이 살 길. 이게 내 삶의 목표였다. 대기업에 입사해서 커리어우먼으로 20년을 일하고, 시간이 날 때 글을 쓰면서 사는 게 제일 좋을 거라고 꿈꿨다. 글은 내가 정말 아주 작은 취미에 불과했다.
재능이라고 여긴 건 우연히 올린 웹소설에 달린 댓글이 시작이었다. 유명한 웹소설은 아니었고, 당시에는 웹소설이 시작인 단계였기에 그냥 끄적거리는 게 좋은 사람이 불과했다. 작품으로 만들 생각이 없냐는 제의가 기묘한 자신감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그걸 기반으로 대학생 시절에는 대외활동을 통해 에디터 업을 시작했다. 아르바이트 일당보다는 더 많이 준다는 말로 시작한 취재가 나를 먹고 살게 할지 몰랐다. 콘텐츠의 힘은 실로 대단했고, 내가 쓴 글들은 여러 번 다른 매체에 우라까이가 되거나 일부 커뮤니티에 자주 오르내릴 정도가 되었다. 취미가 업이 되자마자 통잔 잔고에는 변화가 왔고 나는 자연스레 취미를 잃었다.
그렇게 취미를 잃었다. 남들은 운이 좋은 거라고 했다. 맞다. 나는 취미가 업이 되었으니 운이 좋겠다. 방황하는 청춘의 끝에서 업으로 시작하다니. 어떤 친구들은 나라가 망해도 글 쓰는 사람들은 펜만 있으면 살 거라고 했다. 그래도 나는 웃으면서 답했다. "전쟁 나면 내가 제일 도망칠걸"
취미를 잃은 기분은 바로 딱 그거였다. 정말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취미도 특기도 나는 전부 글쓰기였다. 그래서 업이 되자마자 우울증이 시작됐다. 무엇이든 글쓰기가 기반이 되는 일들을 도맡기 시작하니 숨이 턱턱 막혔다. 그만큼 잘하는 글쓰기가 아니었기에 부족함이 드러날까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들키고 싶지 않아 끝도 없이 써재꼈다. 그 시절 노트북만 들여다보는 나를 엄마는 한심하게 여겼을 테지만 (물론 가끔 지금도 한숨 쉰다) 수십 번을 들여다보면서 고치고, 다시 쓰고, 만들고, 또 쓰고.. 그런 삶의 연속이었다.
꼴랑 5년 차 밖에 안된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나는 다 소진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저 몸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해 일찍 잠들었다. 하지만 자는 내내 숨이 쉬어지지 않았고, 다음날까지도 허덕여 퇴근 후에 응급실로 향했다. 피를 뽑고, 가벼운 검사를 받았다. 응급실 의사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꺼냈다.
"조심스러운데 아무래도 공황장애인 거 같아요. 혹시 증상을 느끼신지 오래 되셨나요?"
몸이 건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정신 질환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진정되는 수액과 약을 받고 응급실을 빠져나와 울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컥컥거리면서 토했다.
담당의사는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항상 긴장된 채 살아가서 그런 거라고 했다. 알게 모르게 압박감을 갖고 있어 그러니 얼른 나을 수 있게 충분한 휴식과 일을 분리해보는 걸 추천한다고. 취미 생활도 즐겨보라고 했던 거 같다. 병원을 빠져나오며 취미가 없어졌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다. 전 즐길 수 있는 게 없는데요. 자연스럽게 고민을 핑계로 술에 입을 대기 시작했고, 알코올홀릭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술병을 앓기도 했다.
내 취미가 업이 되는 순간 나는 항상 두려워졌다. 가볍게 즐길 수 있던 단어들이 조심스러워졌고, 누군가는 내가 쓴 글에 울기도 했고, 때론 웃으면서 나에게 욕을 하기도 했다. 몸서리치게 싫었지만 글쓰기에서 나는 멀어질 수 없었다.
배운 게 이거뿐이니까. 다른 걸 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토록 싫었지만 애써 열심히 쓴 글을 보면서 누군가는 좋다고 하니까. 그 작은 칭찬 한마디에 또 펜대를 잡곤 했다. 고작 그게 뭐길래 라고 하지만 정말 그뿐이었다. 어디선가는 내가 쓰는 단어를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 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좋아하는걸 업으로 삼으면 상처 받을게 뻔한데도 나는 배운 게 이거뿐이라 '글쓰기'로 프리랜서로 인생을 시작했다. 순전히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다시 사랑에 빠지는 사람처럼 말이다. 멍청하지 않은가. 그딴 개고생을 해놓고선 회사 밖을 뛰쳐나와 프리랜서를 하다니.
그래도 이거말곤 할게 없었다. 글은 나의 유일한 취미였고, 나를 살게 했고, 나를 죽게했고, 다시 또 뭐든 하게 만든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프리랜서를 준비하는 당신들에게는 당부합니다. 사랑에 가까운 일이라고 여겨진다면 어딘가에 당신의 값어치를 기꺼이 알아줄 프리랜서가 되셔도 됩니다. 어떻게 시작하든, 충분히 좋아한다는 이유만이라면 시작해도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고통은 당신의 몫이라는 걸 잊지 마시길 바라며!
PS: 좋아하는 일을 하세요! 라고 강요하진 않습니다. 잘하는 일이 업이 될 수도 있고, 취미가 인생이 되기도 하니까요. 그 정도를 찾아가는것이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프리랜서를 비롯한 어떤 단계에 혼자를 선택하시는 분들이라면 저는 조금은 감정에 미쳐 선택해도 나쁘지 않았음을 얘기해드립니다. 부디 제 충고가 과한 꼰대같지 않길 바랍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