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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은 May 18. 2020

4. 나도 퇴사하고  프리랜서 하려고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4년 차가 된 친구로부터 카톡이 왔다.


"저녁에 나 좀 보자"


오래간만에 분위기 좀 낸다고 멋진 식당을 예약해서 실컷 수다를 떨었다. 부장님은 왜 매번 나만 혼내는지 모르겠다, 휴가 가고 싶은데 쉴틈이 없다 등등 직장인의 애환이 잔뜩 녹아있는 주제가 가득이었다. 나 역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공감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파격적인 말을 던졌다.


있잖아, 나도 퇴사하고 프리랜서 할까 봐. 어떻게 생각해?



왜 퇴사하고 싶으세요?


프리랜서를 동경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출퇴근이 없는 삶, 구속받지 않는 환경, 고용에 시달리지 않는 주체적인 태도에 부러움을 갖곤 한다. 맞다, 남들 점심 먹는 시간에 빡빡하게 먹지 않아도 된다는 점. 앉는 곳이 일터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로는 가족들과 긴 시간 행복한 여유를 누릴 수도 있고, 오전에 은행 업무를 여유롭게 볼 수 있다는 점. 장점을 말하자면 아주 가득하다. 하나 이 모든 것은 딱 한 가지가 충족되어야 누릴 수 있다. '돈'


매달 통장에 날짜에 맞춰서 찍히는 월급은 실로 소중한 일이다. 내 위에 보스가 나를 대신해서 돈을 벌어오고 조금씩 먹이를 나눠준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프리랜서는 썩은 고기도 먹어야 한다. 심지어 알아서 찾아 먹지 않으면 사막에서 쫄쫄 굶다가 죽는 처지다.


퇴사하고 프리랜서를 할까 봐 라는 말이 비수처럼 꽂혔을 때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진지하게 물었다. 왜 퇴사하고 싶은데? 친구의 대답은 묵직했다. "회사만이 답은 아니잖아.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 요즘 코로나 때문에 더 난리야. 평생직장이 어디 있겠어"


행복한 Free는 없어

진지한 물음에 진한 대답이었다. 요즘 시대에 고용이 보장된다고 해서 모든 게 안정화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90년대생 중 하나인 나 역시도 직장을 다니던 시절에도 불안해서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다. 결국 프리랜서의 삶으로 다시 컴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평생'이라는 말은 내가 입어볼 수 없는 명품 옷과도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행복을 위해서, 순전히 내 가치를 위해서라면 '평생' 따위 입지 않고, 보세만 입어도 좋으니까 라는 마음으로 가시밭길을 들어왔을 뿐.


나는 행복한 프리랜서는 아니었다. 물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평생'을 찾기 위해서 포기해야 하는 건 꽤나 많았다. 나를 보호해주던 울타리를 하나씩 포기한다는 건 괴로운 일이었다. 고용보험부터 세금 환급까지. 매년 5월마다 찾아오는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에는 왜 이리 신청 항목이 쉽지가 않은지.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쉬운 게 없었다. 이 짓거리를 위해 내가 다시 프리랜서가 되다니. 정말 행복한 Free는 없었다. 친구에게 다시 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프리랜서를 추천하지 않는다 했다. 단호한 내 대답에 친구가 놀란 듯 눈썹을 움직였다.


"너 종합소득세 신고해봤냐"

"아니, 회사에서 연말에 다해주는데 뭐"

"그런 귀찮은 것도 니 손으로 해야 해. 홈택스인지 손택스인지 뭔지 들어가서 알지도 못하는 단어 다 확인하면서 누르고 찾고, 서류 넣고 해야 해"

"그거 때문에 프리랜서를 하지 말라고?"

"아니, 그건 아니야. 이걸 신청하기 전에 국가에서 친절하게 너의 소득이 얼마인지 알려주는데, 그걸 연봉으로 생각해보면 치욕스러워"

"어후.. 야아-"


엉뚱한 해답을 내놓자 친구가 손사래를 쳤다. 자기는 그런 목적이 아니란다. 외국어 강사로 시작해서, 클래스도 운영해보고, 천천히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게 친구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얘기했다. 하고 싶으면 회사 다니면서 재미 삼아 투잡으로 해. 내 단호한 말투에 친구가 입술을 비죽였다.


Plan A, B, C.... Z까지의 굴레


인생이 내가 계획한 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게 우리의 삶이다. 현시점을 기준으로 내 프리랜서 계획표에 따르면 넉넉한 통장 잔고로 매일매일 커피 한잔의 여유를 누릴 수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현실은 개당 170원 정도 되는 커피 믹스를 타서 집에서 마감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커피 한잔 값도 밖에 나가면 사치니까. 한 푼이 아까운 법이다. 당장 다음 달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5천 원의 사치를 이번 달의 내가 누릴 수는 없다.


플랜 에이가 틀려먹었으니 이제 플랜비를 실행해야 하는데, 아뿔싸-! B를 하려면 A가 필요한 삶. 그게 바로 프리랜서다. 당장의 내일도 알 수 없으니 프리랜서에게 계획은 B, C, D만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 Z까지의 계획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


직장인들은 상사에게 혹은 회사에게 대처하는 Z가 있다면 프리랜서는 세상에게 대처하는 Z까지 필요하다. 가끔은 그 Z마저도 먹히지 않을 때도 있으니 씁쓸하다.


이처럼 고용이 보장된 삶의 장점은 밖에서 통용되는 작고 쉬운 일마저 먹힌다 것이다. 프리랜서에게는 작고 하찮은 일마저도 걸림돌이 된다. 대출을 받는 일부터, 세금 처리 등 일렬의 모든 예시를 내 경험으로 들자 친구가 고민에 잠겼다.


그래도 방법이 없겠냐는 친구의 말에 나는 따끔하게 말을 덧붙였다.


"취미 삼아서 해. 시작은 작지만 그 끝은 창대 할 테니"

5 종소세를 훈장처럼  때까지

미래의 프리랜서도, 나도 파이팅


종소세의 달인 5월, 얼마 전 세무서에 다녀오면서 아주 작고 소중한 환급금을 보고 살짝 미소 짓기도 했다. 교통비는 벌었네 라는 생각과 함께 다달이 나갈 생활비에 환급금을 계산하면서 버스에 몸을 실었다.


종소세를 신고하면서 대기 중에 가끔 뒷자리에 0이 여러 개 붙으신 분들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세상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개인 세무사를 하나 고용해도 될 법도 한데, 직접 행차하는 모습은 아주 멋짐 그 자체다.


언젠가는 종소세를 훈장처럼 달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0이 수십 개 찍힌 잔고를 가질 때까지 아자아자 파이팅을 속으로 여러 번 외쳤다.


세무서를 나오면서 문득 친구의 프리랜서의 꿈을 되짚었다. 작디작은 내 환급액처럼 친구의 시작도 소박한 꿈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반대하는 뜻은 아니었는데 돈돈 거리는 프리랜서가 된 기분이 들어 머리를 긁적였다.


원하는 삶이 Free이길 바랬을 텐데. 나 역시도 그 삶을 동경해 왔으면서 못된 말만 늘어놓은 거 같아 머쓱해졌다.


미안한 마음을 담아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다시 생각해보니 너 프리 해도 될 거 같아. 종소세 낼 때 0이 수십 개 붙는 걸 목표로 하면 할만할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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