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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은 May 30. 2020

6. 따로 또 같이 - 협업의 세계①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따로 또 같이. 부부의 세계에서나 통할 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프리랜서에게도 이 공식은 통했다. 프리랜서는 협업의 세계를 걷는다. 클라이언트와 고객의 그 사이사이를 넘나들고 실무자들과 싸움도 하면서 살아남는다. 그래서 준비했다. 프리랜서의 협업의 세계 1탄! 오늘도 협업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프리랜서들에게 꿀팁 같은 생존전략을 전달하고자 한다.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 되어버린 돈 줬던 갑들을 기리는 마음으로! 




① 첫 끗발이 개끗발. 무조건 높게, 높게, 높게!


소박한(?) 화투 좀 쳐본 분들이라면, 안다는 그 말. 초보 프리랜서들은 첫 계약을 따낼 때 스스로의 몸값을 많이 깎곤한다. 나 역시 처음엔 그랬다. 받을 땐 몰랐다. 이 정도면 회사에서 받는거에 비해서 많이 받는거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계약을 했다. 연차가 쌓이고 나서야 알았다. 한번 결정된 가치는 평생을 간다는 것을.

JTBC '최고의 사랑' 캡처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본데..여기서 오래 일하려면 조금 콧대를 낮춰야 할 필요는 있어요"


내가 아직 어리니까, 뭘 잘 모르니 저렴하게 여러번 일하면 좋은 프리랜서가 될 줄 알았다. 허나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값싸고, 알차게, 부려먹자'에 촛점이 맞춰있다. 내가 내 가격을 낮출수록 좋아할줄 알았는데, 일까지 만땅으로 해야 더 좋아했다. 이 사실을 몸이 상하면서 해주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 뒤로 처음부터 '저렴하게 가능해요' 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클라이언트의 태도는 그 때부터 달라졌다. 물론 기분이 좋지 않다는 듯이 말을 꺼내는 클라이언트도 있었다. 하지만 가격 만큼의 일을 한다는 말을 꺼내자, 반응은 상이했다. 돈이 태도가 된 셈이었다. 그 뒤로 어느 곳에 가든 첫 시작은 무조건 높은 가격으로 제시를 했다. 조정을 할 수 있는 밀땅 카드는 천천히 꺼내는 습관이 생겼다. 


프리랜서는 어디서든지, 언제든지 스스로의 몸값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율성을 갖고 있다. 그 점을 잊지 말자. 스스로의 능력을 처음부터 깎을 필요는 없다. 이 세상에 연습생처럼 살기 위해 혈혈 단신으로 나온게 아니지 않는가. 제 값 받고 본격적으로 일하기 위해선 '저렴' 이라는 단어는 잠시 뒤로 물러두자. 


② 온리원 보스는 없다


프리랜서 초창기에는 클라이언트를 평생 보스처럼 모시곤 했다. 나에게 계속 좋은 일을 줄 것 같은 사람이니, 인맥 관리 차원에서 내가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부인사도 살갑게 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허허실실 넘어가곤 했다. 어차피 내게 돈을 주는 분들이니까. 그러니 나도 적당한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온리원이 될 수 없었다. 결국 나는 프리랜서 였으니까, 그들의 <절대적 직원>이 아니었다. 

영화 '보스베이비' 캡처

보스들은 경기가 좋지 않으면 우선적으로 가장 나약한 존재들을 떠나보낸다. 이유없이 통보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프리랜서는 <위촉증명서>로만 인증이 가능한 사람들이었기에 오히려 해고가 쉽고, 빠르다. 다음달에 연락이 안되면 자연스레 나는 해고로 받아들이곤 했다. 인사팀이나 경영지원팀에 전화를 걸어 계약이 해지된건지 비굴하게 물어보기도 했다. 내 존재는 흩어지는 모래알 보다 더 작아졌다. 


"나중에 시간되면 그 때 또 일하자고. 알았죠?"


언젠간 연락 주겠다는 그 말이 그토록 잔인할 줄이야. 채용도, 해고도 빠른 존재가 나였음을 알았을 때 심리적으로 많이 불안하고 힘들었다. 그들은 시간을 돈으로 주고 살 수 있었지만 내게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없을만큼 귀했다. 하루를 살기 위해 어떻게든 버텼는데, 어느날은 전화를 받고 길거리에서 펑펑 울기도 했다.


그 뒤로 나는 보스를 평생의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인간미 있고, 아무리 자상한 보스여도 내가 평생 모셔야 할 의무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쨌든 그들에게 적절히 사용하기 좋은 사람에 불과할테니까. 갑에게는 똑같은 갑의 태도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오랜시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보스들이 생겼다. 심심한 날에는 술한잔씩 사주시면서 고난사들을 함께 견줄수도 있었고, 괜찮은 인맥으로 이어지곤 했었다. 


프리랜서로 오래 일하기 위해선 마음이 덜 다치는 날들이 많아야 한다. 어떤 태도로 나를 울리지 모르니까. 우리는 앞으로 만나야 할 보스들과 실무자들이 넘친다. 그들의 말 하나하나에 일희일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를 데리고 가고 싶어하는 보스를 온리원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③ 안됩니다,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MBC '라디오 스타' 캡처

참 꺼내기 힘든 말이다. 페이를 받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애매한 능력을 가진 실무자들과의 입씨름이었다. 특히 본업에서 벗어나 새로운걸 시도하려는 회사에서는 <안됩니다,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라는 말을 꺼내기가 힘들다. 왜냐, 그들은 내가 전달한 생각을 이해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A라는 회사에서 단발적인 콘텐츠를 만들 때였다. 웹, 앱 둘 다 콘텐츠 자체가 모잘랐기 때문에 뭐라도 써야하는 상황이었다. 블로그에서나 쓸법한 내용들을 급하게 취재해서 담곤 했다. 웹과 앱에 들어가는 내용들은 다르기 때문에 구분이 필요했지만 당시에 나는 '안됩니다,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결국 초창기 페이지는 약간의 허술함으로 채워졌다. 실무자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그뒤로 몇번 A 회사와 일을 하다 어영 부영 마무리 됐고, 내 포트폴리오에서 지우고 싶은 이력이 되었다. 내가 만약 '안됩니다, 어렵습니다, 힘듭니다'라는 말을 했다면 좀 더 완성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을까. A와 같은 회사들을 수차례 더 겪고 나서야 알았다. 설령 말했다고 해도, 나아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됩니다, 어렵습니다, 힘듭니다'는 완성미 보단 실무자들의 방향을 바꿀 순 있었다. 


프리랜서들은 대부분 자신만의 특화된 스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실무자들에 비해서 판단력이 빠르거나 먼저 내다보는 인사이트가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내 포트폴리오에서 빛날 내용물들을 다듬는데 귀재이다. '안됩니다, 어렵습니다, 힘듭니다'는 거절과 부당함을 요구하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산으로 가고 있는 사공들을 잡아 줄 수 있는 유일 무일한 키가 될 것이다. 그러니 불편한 마음으로 끙끙 거리지 말고 당당히 얘기하자. 


"대리님, 이건 안돼요!"




일거리가 떨어져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요즘. 오랜만에 나와 함께 일했던, 돈 준 그들을 떠올리니 피식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어설픈 프리랜서 였을테고, 누군가에는 감사한 사람이었을테지 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협업의 세계에서 오늘도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하는 프리랜서들에게 조금의 도움이 되길, 공감이 되길 바라며. 2탄에서 만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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