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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은 May 20. 2020

5. 달고나 커피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KBS '편스토랑' 캡처


집콕족이 되면서 달고나 커피를 나도 만들었다. 아 이토록 시간이 잘 흐르는 일이었다니. 멍하니 TV를 보면서 한참을 젓고, 또 젓고, 계속 저었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 싶었는데 꾸덕꾸덕 달고나 색깔로 바뀌었다. 우유 위에 살짝 올리니 달달하니 맛있었다. 딱 한 시간 반이 걸렸다. 팔은 아주 많이 아팠지만 그럴싸한 카페 음료가 완성됐다. 세상 모든 일이 이렇게 노력한 만큼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프리랜서를 시작하고 마침표보다는 물음표가 가득한 날들이 많았다. 


빡빡하게 마감 중에는 왜 나는 이걸 한다고 했을까?

바쁘지 않을 때는 왜 나는 일이 없지?

심심하고 우울할 땐 왜 통장은 비어있는가?

.

.

.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명언은 나한테 만큼은 먹히지 않았다. 다디단 열매보다는 쓰디쓴 고통의 과정이 길었기 때문일지도. 통장에 찍힌 0의 자릿수만큼 나의 행복에 비례하고 있었다. 무기력함과 허무함 그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을 때쯤, 줄어드는 통장 잔액이 나를 뒤쫓는다. 그렇게 다시 일을 찾아 나선다. 암요, 먹고 사는 일이 세상에서 중요한 법. 고민은 사치로다. 



노력, 노오력, 노오오오력


프리랜서는 무조건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성실하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아무거나 주워 먹어도 배탈이 나지 않는 배짱과 샌드위치처럼 끼어서 설득을 잘하면 되는 일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이 엎어져도 괜찮다며, 나는 울지 않아-라고 거뜬히 캔디처럼 연기할 수 있는 능력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일 뿐. 그러니 노력, 노오력, 노오오오력은 프리랜서에게 어울리지 않다. 


그래도 노력이 필요하다면.. 해보겠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정당하게 받고 싶은 게 프리랜서의 마음이다. 


창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병사 = 프리랜서


모임에서 알게 된 지인이 프리랜서를 창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병사라고 표현했다. 소속 없이 홀로 전쟁터에서 싸워 살아남아 자유를 얻는 게 프리랜서라고 덧붙였다. 내가 들고 있는 창과 방패가 무엇인지 잠시나마 고민에 잠겼다. 


덕지덕지 스티커가 잔뜩 붙어있는 노트북과 손 때가 가득 묻은 마우스가 창. 저녁 6시면 영업을 마친다는 말과 함께 떼어낼 수 있는 우리 집 현판이 방패 정도 일까. 매일매일이 전쟁터인 내게 창과 방패가 이 정도라면 든든한 일이지도 모른다. 노력이 필요 없는 전쟁터에서 나는 얼마나 더 고군분투하면서 이겨낼 수 있을까. 막막한 마음에 구직 사이트에 들어갔다. 할만한 일이 있을까 싶어서 미어캣처럼 찾아다녔다.


이번 달을 끝으로 보일 일감을 마지막으로 나는 어쩌면 다시 생계전선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작은 소일거리라도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라도 있으면 잠시나마 창과 방패를 내려놓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프리랜서는 창과 방패를 가장 먼저 내려놓고 싶은 전쟁터의 최약체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토록 프리랜서를 오래 하고 싶은 걸까.


다시 한번,

노오오오력의 산물 달고나 커피


다시 한번 노오오오력의 산물, 달고나 커피를 만들었다. 지난번과 다르게 좀 더 꾸덕한 느낌으로 만들고 싶어 욕심을 내다 실패했다. 재도전 끝에 괜찮은 꾸덕함을 가진 달고나 커피를 완성했다. 팔뚝은 너덜너덜해졌지만 나는 베실 베실 웃으면서 들이켰다. 


"그냥 사 먹어 제발"


이런 허튼짓이 뭐가 좋다고.. 그냥 사 먹으라는 단톡 방의 알람이 무섭게 쏟아졌다. 그래도.. 실패해도 좋으니 달고나가 된다면. 그 달달함에 취해 평생을 담백하게 산다면. 제법 할만하다. 평생의 달달함을 위해 오늘도 전쟁터에서 어울리지 않은 노오오오력을 하고 있다. 달고나 커피를 탈탈 털어마실 때쯤 핸드폰이 다시 울렸다. 


'작가님, 저희 이번에..' 


봐라, 어쨌든 달달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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