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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은 Jun 16. 2020

7. 따로 또 같이 - 협업의 세계 ②

프리랜서로 살아남기

헤어진 애인보다 더 강렬한 기억에 남았던 진상 클라이언트들. 오랜만에 한 사람 한 사람씩 떠올리며 기억을 훑었더니 마른세수를 여러 번 하고 싶었다. 부디 프리랜서 동료들이 진상 클라이언트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길 바라며, 협업의 세계 2탄을 기고한다. 아울러 마지막에 '식스센스' 급 반전이 있으니 꼭 다 읽어주시길 바란다.



옥탑방 문제아들 캡처

지금부터 알려드리는 케이스는 실제 경험과 주변 사례들을 다양하게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린다. 읽는 도중 어디선가 께름칙하게 떠오른 클라이언트들이 있다면 그저 나와 같은 경험을 했구나-라고만 여겨주시고, 피식 웃어주시길 바란다.


클라이언트 달래기 1

떼쓰는 클라이언트, 공갈 젖꼭지라도 물려라? NO!


무조건 안 되는 일을 되게 해 달라는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날도 있다. 안된다는 말이 곱게 통하지 않는 진상 클라이언트는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파기 시작한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인신공격으로 프리랜서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이걸 알턱 없는 초보 프리랜서들은 타격이 크지만 업계에서 흔히들 겪는 일이라 여기며, 경험치 삼아 웃고 넘긴다. 하지만 강하게 박힌 상처는 약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덧나기 마련. 폭언을 행사하는 클라이언트에게 익숙해지면 결국 스스로도 클라이언트와 닮는다.


"다른 프리랜서들은 안 그러던데... 왜 상은 씨만 유독 그러는지 허허"


안된다고 웃으며 거절할 때마다 나는 여전히 이 말을 듣곤 한다. 솔직히 안 되는 일을 되게 해 주는 건 오직 신뿐이다. 가끔 신도 바쁘고, 정신없으면... 안 되는 일은 안 되는 일로 두기도 하더라. 신도 해결 못한 일을 억지로 다 해주지 말자. 


징징거리는 클라이언트에게 단호하게 얘기하자. 공갈 젖꼭지를 방패 아이템으로 삼아 마구마구 쏟아냈다가는 더 업그레이드된 기획안을 달라고 큰 울음을 터트릴 수 있다. 그러니까, 떼쓰는 클라이언트에겐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자. 그도 사실 알고 있다. 안 되는 일인데 한번쯤은 해본 얘기라는 걸. 


클라이언트 달래기 2

입금 미루는 당신에게 보내는 서두 

'대표님 입금이 되지 않았습니다'

약 치기 그림


프리랜서들은 매일매일 사기를 당한다. 날짜에 맞춰 입금이 제대로 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예정일에서 하루 이틀은 늦춰지는 건 당연하고,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더 늦게 주기도 한다. 가끔씩은 잊기도 한다. 언제나 그들에게 돌아오는 대답은 "아 그랬구먼, 일단 넣어줄게요 기다려봐요" 이 한마디.


초보 프리랜서들은 돈 달라는 말을 어색하게 생각한다. 괜히 민폐가 되지 않을까 눈치를 본다. 하루 이틀, 주말이 껴있으면 주말 지나고 클라이언트에게 뒤늦게 연락을 하기도 한다. 월요일은 한주의 시작이니까 미안해서, 화요일은 애매한 날짜니까, 수요일이랑 목요일은 그냥 좀 말하기 그래서.. 그렇게 금요일이 오고, 다시 주말. 미루고 미루다 간신히 말을 꺼내면 돌아오는 대답은 "아 내가 넣으라고 할게" 이 한마디.


기다리지 말자. 예정일, 예정시간에서 1분이라도 지나도 당당하게 전화해서 물어봐도 된다. 그러라고 일한 건데 돈 주는 사람 입장은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지금은 오직 내 통장에 들어올 작고 소중한 친구를 지켜야 한다. 당돌하게 전화해서 물어보자. "대표님 입금이 안되었는데요, 언제 주실 수 있나요?" 


클라이언트 달래기 3

따뜻한 프라푸치노, 네가 만드세요 


프리랜서는 같은 프리랜서를 상사로 모셔야 할 때도 있다. 이들이 중간 관리자 역할로 필요한 인력의 프리랜서를 모집하기 때문이다. 보통 이럴 때 따뜻한 프라푸치노가 탄생한다. 중간 다리인 프리랜서가 클라이언트의 오더를 잘못 이해한 채로 요청을 해 그대로 작업하면 몽땅 죄는 마지막에 합류한 프리랜서가 지게 되어있다. 


잘잘못을 따져보면 누가 원인인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온갖 누명에 휩싸이는 건 마지막에 합류한 사람이다. 따뜻한 프라푸치노를 만든 내가 죄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누군가는 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땐 튀는 게 최선의 방책 같겠지만, 이미 받은 계약금을 토해내기엔 늦었을 것이다. 카드값으로 벌써 나갔을 테니까.

1박 2일 캡처

방법은 딱 하나다. 죄송하다고 접시물에 코박을 듯이 죽는시늉을 먼저 한다. 다소 오버스럽더라도, 그게 최선이다. 그다음 오더를 넣은 클라이언트와 중간 다리를 한꺼번에 만나는 걸 제안한다. 이 프로젝트의 전체 개요를 알고 싶고, 오더를 넣은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싶다는 의사표현을 뚜렷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포인트, 프로젝트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기에 나는 여기서 빠질 수 없다는 논리를 화려하게 펼쳐야 한다. (인간에게 입이 있는 이유는 바로 그르친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클라이언트는 직접적으로 실수를 한 프리랜서 이야기를 들으면 화는 나지만 그래도 일단 들어주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일에 적극적인 사람을 쉽게 뺄 수도 없을 터이고, 오더에 무슨 오류가 있는지는 클라이언트도 알고 싶기 때문이다. 막상 듣고 나면 중간 다리가 실수한걸 클라이언트는 안다. 하지만 이미 중간 다리에 대한 세월로 쌓인 신뢰와 믿음으로 눈감고, 막판에 참여한 프리랜서를 호되게 팰 뿐이다. 


민망하니까 패는 거다. 이미 나온 따뜻한 프라푸치노를 따져서 뭐하겠는가. 오히려 위기가 곧 기회랬다. 그 프라푸치노가 나중에 판을 뒤집는 해결책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엎질러진 물을 억지로 담지 말고, 빠른 인정과 빠르게 대안과 해결책을 찾아 대령하자. 


클라이언트 달래기 4

매일매일 연료가 가득인 열정 머신은 없어요 


무리해서 일을 만들 필요가 없다. 내 사례는 아니지만 방송계에서는 체력적으로 무리해서 몸까지 상한 케이스들을 많이 봤다. 섭외를 하기 위해 밤새 서치, 쉬지도 않고 답사 가기, 대소변 볼 틈도 없이 카메라만 들여다본다던가.. 듣고 있으면 가히 가학적인 행태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극기 훈련을 돈 받고 하겠다니. 


매일매일 연료가 가득인 열정 머신은 없다. 클라이언트들은 프리랜서가 고도의 집중과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길 바란다. 하지만 프리랜서가 항시 준비된 사람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협업의 세계에서는 '같이'가 중요한 법. 내가 100%의 에너지를 써도 안되기도 하고, 내가 10%만 썼는데도 결과가 좋기도 하다. 결과는 방송이 on air 되고, 한참 끝나고, 재방에 삼방에, 다시 보기 vod가 뒷순위로 밀려났을 때가 되어서야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매일매일 열정을 억지로 불태우지 말자. 가끔은 쉬고, 인간답게 일하시길 바란다. 





라디오스타 캡처


쓰고 나니 막상 화내야 하는 순간에 화도 못 내고, 실실 웃거나 뒤에 가서 울었던 기억이 많더라.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고, 내가 해낸 것도 협업의 세상에서는 모두가 해낸 일이 되곤 했다. 억울하고 답답했다. 왜 내가 이토록 열심히 했는데 돌아오는 건 휴지조각 밖에 되지 않는 걸까 싶은 원망이 들었다. 


협업의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손들이 존재한다. 내 손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분명 내가 잘한 일에 또 더 잘난 손들이 얹혀서 빛을 보고 있는 포트폴리오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묵묵히 내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면 가끔 귀한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오늘도 이리저리 치이고 있는 여린 프리랜서들에게 최근 백상 예술 대상에서 배우 오정세 씨가 한 말을 빌리고 싶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잘해서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고 내가 못해서 결과가 나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많은 분들이 살고 있는데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지치지 말아 달라.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 일을 계속하셨으면 좋겠다. 안 된다고 자책하지 말아 달라. 여러분 탓이 아니다. 계속하다 보면 평소에 똑같이 했는데 그동안 받지 못했던 위로와 보상이 여러분들을 찾아오게 될 것이다. 나한텐 동백이가 그랬다. 여러분들도 모두 곧, 반드시, 여러분들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나만의 동백을 만날 것이라 믿어달라. 여러분들이 동백꽃이 활짝 피기를 나도 응원하겠다"


나는 여러분들의 통장에 0이 무한으로 넘치기 만을, 기도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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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통장에 0이 가득 차있길 바라는 마음에 무리해서 오전에 해 X스 어학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출근 5일 차, 해 X스 어학원 사무실에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6월 10일)

이후 집으로 급히 귀가 후 다음날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음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현재 날짜 기준으로 약 1주일째 집에서 자가격리 중입니다.  


그래서 프리랜서 살아남기는 

다음 편부터 정말 <<<살아남기>>> 편으로 잠정 연재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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