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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상은 Jun 22. 2020

9. 나 혼자 자가격리 2 - 한번 다녀왔습니다.

프리랜서 살아남기

드디어 마지막 격리를 앞두고 있습니다. 오늘 중으로 보건소에서 해지 통보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락은 오지 않았어요. 아마 격리일 마지막 날에 맞춰 연락을 주려는 모양입니다. 여하튼 나 혼자 자가격리 2탄 시작할게요.




검사, 한 번 다녀왔습니다.


덜덜 떨리는 마음으로 보건소를 향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 살고 있는 집이랑 보건소는 멀지 않아 후딱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강서 보건소에서 검사를 했네요. 마스크 두 겹, 장갑 두 겹으로 등장한 나를 보던 코로나 검사 담당자분은 이름부터 먼저 확인했습니다. 검사 당일 오전까지만 해도 명단에 늦게 포함돼 하루를 더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운 좋게도 오후에 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검사는 다음과 같이 이뤄집니다.


이름 확인 후 대기석에 앉아 있으면 검사는 시작됩니다. 대기석에서 다시 한번 신원을 확인하고, 전신 다 소독약을 뿌립니다. 아주 강한 알코올 향이 코 끝을 스쳐가고, 들어가서 의자에 앉아 기다립니다. 코로 긴 면봉이 한 개, 입으로 긴 면봉이 한 개. 총두 개의 면봉이 스쳐갑니다. 아 ~ 소리 내주세요, 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쑥쑥 찔러대면 검사는 끝입니다. 나갈 때도 온몸에 소독제를 범벅하고 나옵니다. 소요 시간은 약 10분.


사람이 많지 않을 때 가서 그런지 검사 시간도, 기다리는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어요. 실로 간단한 검사 방법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신기하다! 를 여러 번 외쳤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뜰 때까지 저는 또 잠들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무증상 감염자가 될까 걱정이 들어 고양이 사료를 가득 쌓아줬더라죠. 만약에 곧장 입원하게 된다면 혼자 있어야 하는 내 새끼 밥은 어찌 챙겨주나 하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고작 검사, 한 번 다녀왔는데 마음은 저세상을 한 번 다녀온 기분이었습니다.


코로나의 원픽은? '음성'

하룻밤을 꼬박 지새우고, 아침 9시가 되자마자 보건소 연락만을 기다렸습니다. 정확히 9시 1분.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결과는 우려와 다르게 '음성'이었습니다. 동시에 다시 한번 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엄마였고요.


"결과 나왔어?"

"응 음성이래. 거봐 괜찮다 그랬잖아"

"아휴, 다행이다. 엄마도 자가격리해야 하나 했잖아"

"은근 기대했나 보네"

"병원 출근 안 하고 좋지 뭐.. 그래도 이제 잠 좀 자겠다"

"엄마 못 잤나"

"당근 못 자지. 어떻게 자나.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병인데"


잠을 못 잔 건 비단 저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엄마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고 했습니다. 그간 이틀 동안 잠이 오지 않더라며, 비상 물품은 뭘 보내야할지 고민도 했다고 하셨습니다.


딱 48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평소 같았으면 그냥 이렇게 일주일의 반이 흘러가는구나 했을 법한 시간이 어찌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어쩌면 너무 요란스럽게 받아들인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혼자 사는 이 공간에서 오직 고양이와 저만 생각하면 두려웠습니다.


14일의 대여정 시작


그렇게 14일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음성이 뜨자마자 보건소와 주민센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총 4건의 문자가 왔습니다.


1) 정신건강 동영상

음성 판정 이후 먼저 찾아온 문자는 바로 정신건강복지센터였습니다. 장기간 집에만 있어야 하는 자가 격리자들을 위한 심리 지원이라고 했습니다. 격리 기간 동안 신청하는 일은 없었지만 (재택근무..) 아마 외부 활동이 많은 분들에게는 14일은 체감적으로 더 버거웠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심리적으로 안정적이진 않았습니다. 격리 5일째 기침이 좀 나고, 몸에서 열이 나는 듯해서 감기약을 먹었거든요.(약 복용 여부에 대해 혼란스러운 분들은 반드시 1339에 전화하세요)


다행히 체온도 정상, 약을 먹고 난 뒤로는 크게 별 일이 없었지만 그때부터 괜히 기침 한 번이라도 하게 되면 신경이 쓰더랍니다.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 창문밖 생활소음에 예민 해지고. 평소 같았으면 들신경쓰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죠. 참,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재택근무에 익숙하고, 집에서 하는 일에 어느 정도 단련이 된 저지만 격리 기간만큼은 불안과 예민함의 극과 극을 달렸습니다. 단순히 업무를 마치고 잠깐이라도 나간게 생각보다 사람답게 살아가는 구실이었더라고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어느 학자의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2) 14일 치 식료품 vs 현금 10만 원


두 번째로 온 문자는 생필품을 지원받을지, 현금을 지원받을지 묻는 여부였습니다. 이미 여러 개의 밀 키트를 시킨 저는 현금을 선택했지만 격리가 다 끝나가는 지금 생각해보니 생필품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겠다 싶었습니다.


참고로 격리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입금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상당한 시일이 아니라 많은 시일이 소요되는 걸로 예상해봅니다.


3) 자가 격리자 전용 앱 설치

안전관리 앱을 설치하라는 문자가 도착하고 나니 마음이 제법 무거워지더라고요. 주소지를 입력하고 위치를 항상 허용하고, 자가 진단을 별 탈 없이 마쳤습니다. 핸드폰 한 구석에 이런 앱이 설치되었다는 점이 또다시 사람 심리를 묘하게 하더이다.


하루에 딱 두 번씩 스스로 자가진단을 합니다.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이것도 시간을 지키지 않으면 전담 공무원에게 연락이 옵니다. 저는 딱 한번 왔는데요. 주말 오후까지 늘어지게 자다가 전담 공무원의 "입력해주세요..."라는 요청에 그 뒤로 아침 9시마다 기록했습니다.

 

지금 이 시국에는 어떠한 일탈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최대한 규칙을 준수하고, 도덕적인 행동을 취해야 하는 게 응당 맞죠. 하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정말 그렇지 않더라고요. 10여 일이 흘렀을 무렵, 지금까지 별 증상 없는데 확 나갔다 와도 되지 않아?라는 충동적인 마음이 은근히 들더라고요. 오롯이 혼자 있는 공간에서 드는 순간적인 마음이 무섭기도 했습니다.


햇살 좋은 날, 나가고 싶을 때마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심심한 마음을 달래곤 했습니다. 격리 기간 내내 제 말벗이 되어준 사람들이 한없이 고마울 뿐이죠. 참고로 제 친구들이 저를 달래준 비결은 "나가면 벌금 문다"였습니다. 실제로 벌금도 물고, 창피함은 배로 얻게 되니 부디 집에 잘 있어주시길 바랍니다.


4) 전용 쓰레기봉투 & 마스크 & 소독제


오후쯤에는 주민센터에서도 친절하게 찾아와 주셨습니다. 문 앞에 부스럭 부스럭 소리를 내더니 저에게 전화를 거시더라고요.


"조상은 님이시죠? 보건소 요청으로 주민센터에서 나왔습니다"

" 아, 네 "

"전용 키트 받아 가세요. 지금부터 확인하겠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나가니 이미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저를 확인하는 주민센터 직원분이 계셨습니다. 검은 봉지를 열어보니 이런 게 나오더라고요. 사진에는 없지만 마스크 두 개도 받았습니다. 살균액과 폐기물 봉투까지. 매일 아침 이 녀석들과 함께하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폐기물 봉투는 흔히 쓰지도 못할 물건일 때, 사람이 손이 닿아선 안될 때 받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제 입에서 나오는 모든 타액들은 전부다 손 대선 안될 것 중에 하나가 된다는 사실에 아침마다 놀라곤 했습니다. 인간이 이리도 쓸모없는 존재라는 걸 이 봉투를 볼 때마다 실감합니다.


너무 오버 아니냐 싶은데요, 참고로 하루에 한 번씩 저 봉투 소독해줘야 합니다. 오전에 한 번씩 뿌리고 나면 나는 정말 소독해야 하는 인간인가 싶은 생각이 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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