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살아남기
지난 화에 알려드렸다시피 10일부터 자가격리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생각할수록 너무 웃긴 일ㅋㅋㅋㅋㅋ) 그간 집에서 진짜 살아남기를 몸소 체험하게 됐습니다. 프리랜서로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겁이 은근히 나더라고요. 여하튼, 격리 3일을 남기고 그간의 일대기(?)를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은 자가격리를 앞두고 있는, 혹은 자가격리를 하게 될지도 모르는 여러분들이 잘 보시고 본인 차례가 되실 때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격리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르바이트 담당자로부터 들었습니다. 외주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아르바이트였는데, 5번째 출근하는 날 격리 지침을 받았습니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전 9시 웅성웅성한 분위기가 좀 이상했습니다. 일개 아르바이트생이 관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컴퓨터를 켜고, 출근 도장을 찍었는데 담당자가 전화를 했습니다.
"상은님, 일단은 퇴근을 하셔야 해요"
"네? 지금요?"
"아 그게요.. 사무실에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요. 바로 퇴근하시고, 보건소 문자 받으면 코로나 검사받으러 가시면 됩니다."
퇴근? 보건소? 코로나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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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출근하자마자 퇴근도 황당한데 확진자랑 같은 사무실에 있었다는 사실이 더 황당하더라고요. 확진자에 대한 정보는 나중에 뉴스를 통해서 들었지만 사무실 내에서도 가장 먼 곳에 있었지만 한 공간을 같이 썼으면 포함되는 거 같습니다. 우선 퇴근 조치를 하라는 말에 주섬주섬 짐을 싸서 내려왔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직원들, 아르바이트생들이 우수수 내려왔습니다. 확진자와 가까운 곳에 있었던 분들은 우선적으로 보건소 문자를 받고 급히 근처 보건소로 향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당시 저는 문자가 오질 않았고, 자택에서 기다려 달라는 담당자의 지침만 받고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뭔가 덜컥 겁이 나면서도 이 상황은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서 어학원 1층에서 주춤거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선 재빠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당황스러워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날 현장에 있던 분들 대부분이 그런 심정이지 않았나 조심스러운 추측을 해봅니다. 여하튼 신체 접촉은 최대한 적게 하라는 공익방송이 떠올라 급히 편의점에서 비닐장갑을 구매했고, 마스크를 더 꾹꾹 눌러쓰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그나마도 동선을 줄이기 위해 택시로 이동했습니다. 퇴근 후 해야 할 일들이 급히 떠올라 비대면 서비스로 모든 걸 전환했고, 전달해야 하는 모든 서류는 퀵서비스를 불러 해결하기도 했죠. 부동산 재계약이 있는 주간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사정을 밝히고 격리 이후 계약을 하는 걸로 부탁을 해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집까지 올라가면서도 사실 별로 실감은 나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아마 오전 11시쯤이었던 거 같습니다. 현관문을 닫고, 손을 씻으면서 뭐부터 해야 하나 고민이 들더라고요.
머리가 하얗게 질렸고, 황당함에 웃음만 나더라고요. 기다리면 관할 보건소에서 하루 안으로 연락이 온다고 하여 노트북을 켜고 격리 물품을 준비했습니다. 마스크, 밀 키트, 위생장갑, 알코올... 참 별의 별거 다 샀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검색을 시작했죠. '무증상 격리' '코로나 19 무증상' '무증상 결과' '자가격리 지침' 나에게도 해당되는 건지 하나둘씩 찾아봤더라죠.
인간이 강인 하다는 건 어쩌면 다 뻥일지도 모릅니다. 지하철에서 누가 기침만 해도 '코로나 아냐?'라고 눈치를 살피는 걸 보면 알 수 있죠. 재난 재해 앞에서 강한 인간은 없다는 걸 느꼈습니다. 필요한 물건들을 주문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좀처럼 나아지진 않더라고요.
아르바이트는 2주 동안 재택근무로 전환했고, 격리 관련 공문을 받게 되면 연락을 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재택근무 소식에 침대에 누워 저희 집 고양이를 한참 쓰다듬었죠. 갑자기 아프면 어쩌지? 검사를 했는데 증상은 없고, 양성이 나오면 어쩌지? 우리 집 고양이 밥은 누군가는 줘야 할 텐데.. 검사받으러 오라고 할 때까지 오만가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남들은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으니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을 테지만 제일 걱정인 건 나도 모르게 감염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오후 3시쯤 용인에 계시는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얘기를 듣던 엄마가 꺼낸 첫마디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줘선 안된다"였습니다. 저희 엄마는 요즘 가장 고생 중이라는 의료인이거든요.
여하튼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노래가 수어 번 스쳐가고 난 다음에서야 저녁 9시, 기다리던 코로나 19 검사 관련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검사는 집과 가까운 보건소에서 진행될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마음은 참 싱숭생숭하더라고요.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없이 피해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입장이 반갑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쩌면 피해를 주게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있어야 한다는 게 참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역시나 가 될까 봐 였을지도 모릅니다.
다음날, 관할 보건소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네, 조상은 님. 코로나 검사 대상자 이시고요. 오늘 중으로 오실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