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장모님 모시고 아들아이와 함께 강릉집에 갔다. 우리 집에서 발코니 너머로 처가가 보일 만치 서로 가까이 사니 “친정 다녀올게”는 옛말이겠다.
몇 해 전 다리가 놓여 처음 뭍과 이어진 교동도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세월 쌓인 잘생긴 조선집이 있어 사진 찍으며 기웃거렸더니 인상 좋은 어르신께서 들어와 차나 한잔 하고 가라며 부르신다. 과일 몇 점과 차로 간소한 다과상을 내오셨다. 천장 대들보에는 1950년대에 쓰인 상량문이 선명하다. 시아버님께서 궁 목수를 모셔 지은 집이라 했다. 경상도 친정에는 시집온 지 30년이 지나고서야 가보셨다지. 섬에서 뭍 나서기가 그리 버거웠고 잠시의 자리 비울 수 없는 며느리, 아내, 엄마의 짐이 무거웠으리라. 장모님을 모시고 여행 가면 친정에 가는 것이나 다름없겠다. 학교 수업이 있는 딸아이와 나는 집에 남았다.
언젠가 Y 선생님께서 당신의 결혼 생활을 들려 주셨다. 신혼 때부터 각방을 쓰셨다 했다. “각자 개인 생활이 지켜져야지. 아, 물론 사랑할 때는 한데 모였다가 잘 때는 다시 각자 방으로 가지.” 능청스럽게 웃으셨다. 부인께서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을 채우신 것은 그런 배려도 한몫했으리라.
자폐가 있는 아들아이는 어릴 때 심한 수면 장애로 밤에 잠을 자지 못했다. 갓 회사를 만든 때였다. 나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뛰어다녀야 했다. 다음 날 일하자면 얼마쯤이라도 잠을 자두어야만 했다. 우리 부부의 각방 생활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좀 씁쓸한 기억이지만 이불 덮는 정도와 잠자리 온도가 달라 서로 당황했던 신혼을 떠올려보면 좋은 점도 있다.
떠나면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서로 거의 연락하지 않는다. 아내는 이번 여행이 무척 좋았다고 했다. 봄이 한창이었다. 이런 좋은 계절에는 방 안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야외에서 조용히 봄 풍경을 마음에 담는 것이 더 좋은 공부일 것이 틀림없다. 노련한 농부가 볕이 약한 아침과 저녁 무렵에 일하고 한낮에는 쉬며 다음 일을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도 봄과 가을에는 풍경 아래서 생각에 잠기고 여름과 겨울에는 에어컨과 난로 곁에서 열심히 일하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작은 차로 오가는 먼 길이 걱정스럽긴 하다. 아내는 조심히 차를 몰 테니 염려 말라 했다. 서로 떨어져 있으면 평소에는 모르던 빈자리가 느껴진다. 내가 없으면 그도 그렇게 느낄까. 이 집에서 빈자리가 느껴지는 사람일까, 나는.
강릉에서 보내온 사진 몇 장에 봄이 담겨 있다. 싱그럽다. 분명 즐거우리라. 아들아이도, 어머님도. 잘 갔다. 훌쩍 떠날 수 있는 집이 저만치, 잘생긴 해송이 줄지어 늘어선 바다 곁에 있다. 바람을 쐬고 싶을 때, 고집스런 나를 감당하기 버거울 때, 그는 조용히 강릉집을 다녀올 것이다. 그런 완충지대가 우리에게 있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