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소년

by 박상하

우리 가족 외에 누가 알까. 아들아이가 그토록 아름답고 멋진 청년이라는 것을. 한 번 갔던 길은 좀체 잊지 않을 만큼 기억력이 좋고, 세제를 묻혀 개수대에 담아 놓은 설거지를 슬그머니 물에 헹구어 건조대에 옮겨 담아 놓고 시치미를 땔 만치 사려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많이 웃고 자주 흥이 넘쳐 우리에게 웃음을 나누어 준다는 것을. 아들에게는 자폐가 있다.


아들아이는 차를 타고 이곳저곳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주말이면 아이를 태우고 함께 마음 편히 걷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다. 사춘기를 맞아 혼자 있는 시간이 소중한 딸아이는 집에 남지만 장모님이 함께해 도로 네 식구다. 도심에서는 길 여기저기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동차들에게서 무심히 걷는 아이를 조심시키느라 신경이 곤두선다. 아들이 자라며 훤칠한 키만큼이나 보폭이 넓어지고 걸음걸이도 빨라져서 엄마와 할머니는 그 뒤를 따르기가 쉽지 않았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교외의 아웃렛과 복합 쇼핑몰 등 차와 사람이 분리된 대형 실내공간으로 가닥을 잡았다. 주말마다 파주, 삼송, 고양, 영종도의 대형 쇼핑몰과 호텔 컨벤션몰 들을 번갈아 오갔다.


아이는 어딘가로 떠나는 것을 즐겼다. 우리가 강릉에 두 번째 집을 마련한 것은 아이와 지역에서 사는 삶은 어떨까 미리 경험해보려는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는 강릉집을 좋아했다. 현관을 나서면 바로 마주보이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고 놀이기구를 오르내렸다. 집안에서도 자기 책상을 차지하고 언제나처럼 폰과 태블릿으로 동영상을 보며 일상을 즐겼다. 강릉의 식당들도 좋아했다. 두부전골을 맛있게 먹었고 나물을 곁들인 보리밥도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식사 후 소나무 동산을 가족 모두 함께 돈다. 아름이 넘는 준수한 소나무들이 울울창창한 가지로 볕을 가려주고 무수한 솔잎으로 바닥에 푹신한 융단을 깔아준다. 내가 앞장서고 아이와 아내가 뒤따른다. 발걸음 소리가 사각거린다. 송진향이 향기롭다. 공기는 달다. 행복이란 이런 것이다.


나이 들어 아이들이 예뻐 보이면 손주 볼 할아버지가 될 때가 이른 것이라 들었다. 그럴 리가. 자신을 더 닮은 자기 아이가 더 예쁘지 않았을까. 그때는 먹고사느라 바빠 곁에 누운 내 아이가 그토록 사랑스러운지 미처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 그 예쁜 아이는 자라 준수한 청년이 된다. 그동안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적었던 아빠와는 어딘지 서먹하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 허락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삶. 아이들이 곁에 있을 때 부모님이 곁에 계실 때 그 순간을 함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J 선생님과 이야기하다가 아들 이야기가 나왔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평범한 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는 기회가 있으면 꺼리지 않고 우리 사는 이야기를 꺼내는 편이다. 선생님은 묵묵히 듣고 계셨다. 내가 말을 마치자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내게 당신만한 아들이 있소” 그분께도 자폐 있는 아들이 있었던 것이다. “천사님 한 분 집에 모신다고 생각합니다” 내 나이의 아들이라니. 자폐라는 말도 없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선생님 가족분들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늘 미소 띤 그분 얼굴은 그런 깊이에서 나온 것이었다.


언젠가 본 텔레비전 방송이다. 고향에 홀로 된 어머니 곁을 정신 장애가 있는 아들이 묵묵히 지키고 있었다. 아들아이도 우리 곁을 지킬 것이다. 천사처럼 우리에게 사랑을 나누어 줄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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