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그저 신나게 노는 것이 내 유년기 하루 일과였다. 부모님은 나를 유치원에 보내는 대신 시골에서 키우셨다. 집 뒤에 조그만 개울이 흘렀다. 눈 뜨고 먹는 둥 마는 둥 아침밥을 들고 나면 빨간 플라스틱 소쿠리 하나를 곁에 끼고 개울로 뛰어 내려간다. 물길을 소쿠리로 적당히 받쳐 막고 무성한 물가 풀숲을 맨발로 푹푹 쑤신 후에 소쿠리를 들어 올린다. 물 빠진 소쿠리 위에는 자그만 송사리 몇 마리가 은빛 배를 반짝반짝 드러내며 파닥거렸다. 이따금 입가에 수염 달린 시커먼 미꾸라지를 건지기도 했다. 2층 높이였던 (떨어졌다면 큰일이 났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농수로 위를 뛰어다니며 볕에 새카맣게 타도록 종일 놀았다. 작대기를 들고 애꿎은 뱀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께서 직장을 옮기시며 서울로 올라왔지만, 꽤 오랫동안 부모님은 시골에 소박한 흙집을 남겨 두셨다. 방학 때면 여러 날, 평소에도 주말이면 온 가족이 그 집에 내려가 주말을 보냈다. 비워 놓았던 집에 도착하면 부모님은 부산스러웠다. 거미줄을 걷고 방바닥을 쓸고 닦고 이불을 털고 널어 볕을 쬐였다. 불을 넣어 방의 냉기를 눅였다. 좀 쉴 만하면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우리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시간은 가능한 온전히 책 읽고 음악 듣고 이야기 나누고 쉬는 데 쓰고 싶었다. 손이 많이 가야 하는 마당 있는 주택은 무리였다. 머무는 시간보다 집을 비워 두는 시간이 더 많으니 동네 주민들과 가까워지는 걸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우리에게는 잘 관리되는 소박한 아파트가 어울렸다. 바닷가에서 멀지 않고 풍광이 좋았으면 했다. 외진 곳은 아이들 안전이 우려되고 일상이 불편할 것 같았다. 밥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좋은 마트가 가까이 있어야 했다. 걸어 갈 수 있는 거리에 식당도 있었으면 했다. 그러자면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던 동네여야 했다. 이곳저곳 제법 발품을 팔았다. 춘천, 군산, 강릉이 물망에 올랐다. 내가 서울 시민이 아니라 부산 시민이었다면 분명 통영과 경주를 후보에 넣었으리라. 우리는 강릉에 마음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