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스러운 고장 강릉

by 박상하

두 번째 집, 우리 가족만의 길지를 찾아야 했다.


서울집에서 오가기 적당한 거리여야 했다. 오가는 데 진을 다 뺄 수는 없으니.


가급적 바다가 가까우면 좋겠다. 먹거리도 풍부할 테고 바다를 바라보면 갑갑한 일상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공기가 맑았으면 좋겠다. 어떤 곳은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데도 의외로 공기가 탁했다. 찾아가 둘러보고서야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 국가 주요 시설들은 국내 지도에는 흔히 누락된다 - 화력 발전소가 주변에 있었다. 아내는 공기가 나쁜 곳에서는 금세 비염에 시달린다.


집 근처가 걷기에 좋은 곳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곳은 의외로 차가 많아 마음 놓고 걷기가 쉽지 않았다. 장애 있는 아들아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서면 우리는 늘 신경이 곤두선다.


밤에도 안전한 곳이었으면 좋겠다. 아내와 딸아이가 밤 산책을 나설 수 있어야 했다. 외져서 인적이 드문 곳은 피해야 했다.


좋은 병원이 있으면 좋겠다. 혹 갑작스레 누군가 아프더라도 대형 병원이 멀지 않으면 안심이다.

훌륭한 산과 숲이 가까웠으면 좋겠다.


강릉은 이런 바람들을 대부분 만족시켰다. 서울집에서 오가는 데 드는 시간이 30분에서 1시간 정도만 적었다면 만점에 가까웠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점수로도 충분히 훌륭하다.


강릉의 바닷가는 아름답다. 파란 바다가 맑은 하늘 아래 하얀 파도를 두르고 출렁인다. 구불구불 검푸른 소나무들이 늠름하게 무리 지어 서 있다. 모래사장은 곱게 눈부시다. 오솔길 위에 수북이 쌓인 솔잎은 푹신하고 향기롭다. 어느 곳에서부터 걷기를 시작하더라도 ‘아, 행복하다’ 감탄하고 만다.


속초와 양양에는 한계령과 미시령과 설악산이 있지만 강릉에는 대관령과 진고개와 오대산이 있다. 멀리 산맥 위에 둥글둥글 돌아가는 하얀 바람개비가 보인다. 대기리와 육백마지기 풍력발전단지다. 영서지방과 영동지방의 공기가 다른 것은 저 높은 태백산맥 덕분이다. 미세먼지는 대개 령을 넘지 못한다. 기관지가 좋지 않은 아내는 강릉에 들어서면 숨이 트인다고 한다. 달큰하게 느껴질 만치 공기가 청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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