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집 꾸미기

by 박상하

집이 생겼다. 이전에 계셨던 분들이 남겨둔 세간이 좀 있었다. 목공을 취미 삼으셨다던 전 주인은 싱크대 위에 제법 그럴 듯한 목재 선반을 달아 두었다. 간결한 사방탁자와 책상 상판 등도 남겼다. 작은 3인용 인조가죽 소파, 입구 곁에 둘 소파 스툴도 넘겨받았다. 받지 않았다면 구하지 않았을 텔레비전과 야트막한 장식장도 남았다.


신혼 가구를 들일 때 어머니께서 나서셔서 냉큼 고르셨던 터라 - 우리 안목이 못 미더우셨거나 물건 사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으셨던 것이겠다 - 우리는 우리가 고른 가구를 가져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이번이 좀 사 볼 기회일까.


그렇지만 이 집은 가능한 비워 두는 게 좋겠다. 쌓인 책과 짐으로 넘쳐 나는 서울집과는 달라야 했다. 집에서도 쓰는 철제 다리에 깨끗한 흰 상판을 얹은 작업용 테이블 두 개를 강릉으로 배달시켜 직접 조립했다. 허리를 꼿꼿하게 받치는, 제일 단순한 의자 몇 개를 샀다. 저만치 방구석 사방탁자 위에 이 집을 음악으로 채울 티볼리 라디오를 올렸다. 아파트의 TV 안테나 단자와 연결하니 이럭저럭 클래식 FM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구석 자리에 놓으니 저음도 제법 살아난다. 어지간한 오디오 못지않다.


창문에는 전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재봉질하여 적당히 만들었다는 광목 커튼을 그대로 두었다. 벽은 거개 비우고 아이들이 그린 그림 몇 점을 걸었다. 이제 우리집 같다.


밝은 색 천으로 인조가죽 소파를 덮어 큰 방 벽에 밀어붙였다. 스툴은 방에서 꺼내 현관 곁에 놓았다. 집에 들어와 신발을 신고 벗을 때나 잠시 짐을 놓을 때 유용할 것이다.


서울집에서 남는 그릇과 잔을 강릉집으로 옮겼다. 소박하지만 짝이 맞고 나대지 않는 물건이 왔으면 했다. 아담한 크기의 머그컵, 커피 잔, 접시, 밥공기, 얼추 4개씩 짝을 맞췄다. 커피 포트와 서버, 드리퍼도 갖췄다. 식사 후에 커피를 내려 들고 이야기 나누는 즐거움이 없다면 무어하러 이곳에 내려올 것인가.


붙박이 벽장에는 이불과 편안한 바지, 바람막이, 다운 조끼, 파카 정도를 넣었다. 나머지는 올 때 챙겨 오면 충분하다.


세탁기는 놓지 않기로 했다. 빨래는 서울집으로 가져가면 그만이었다. 급한 빨랫거리가 생긴다면 가까이 있는 코인 세탁소를 이용하면 될 터이다.


밤늦게 내려올 때가 잦았다. 아침으로 먹을 단팥빵 몇 개를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 잠자리에 눕기 전 꺼내 놓으면 다음날 아침에 갓 내린 커피와 함께 먹기 좋다.


냉장고에는 맥주 몇 캔, 와인 몇 병, 소주와 고량주 한 병씩이 들어 있다. 모두 식사에 곁들일 반주다. 과일에 화이트 와인, 생선회에 소주, 기름진 음식에 고량주가 함께하면 음식의 풍미가 살아나고 마음은 넉넉해지고 이야기도 더 즐거워진다.


작은 집이지만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유롭게 비어 있는 공간 덕분이다. 이제 언제라도 내려갈 수 있다. 집은 우리 맞기를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

전 집주인께서는 작은 잔을 하나 남겨 놓고 가셨다. 험상궂은 사내와 교태 넘치는 여인이 얼싸안고 있는 일본화가 그려진 물건이었다. 볼 때마다 두 분이 떠오른다. 애교 있는 분들이셨다.

이전 06화집 고르는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