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고르는 재미

by 박상하

강릉에 두 번째 살림을 차리기로 했으니 이제 살 동네와 집을 골라야 했다. 전세로 한번 살아보는 것이 무던한 선택이었겠으나 당시 강릉은 전세가가 집값의 80%에 가까울 만치 전세와 매입 가격 사이에 차이가 적었다. 단지 규모가 적당한 아파트를 구입한다면 언제고 되팔 수 있을 테니 환금성도 나쁘지 않을 터였다. 아이들 데리고 집 망가질까 성화하는 집주인 눈치 보지 않고 집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집을 구입하기로 했다. 중앙동 등 구 시가지, 교동 등 신 시가지, 경포와 주문진 등 해변가가 물망에 올랐다.


예산은 넉넉하지 않았다. 신 시가지 집들은 지은 지 오래지 않은 대단지 아파트가 많아 우리가 준비한 예산으로는 어림없었다. 게다가 모처럼 서울을 떠나 강릉에 내려왔는데 이곳에서도 아파트 앞 동을 보며 지낸다는 것은 아무리 지척에 바다가 있다지만 서운한 일이었다. 구 시가지에는 매력적인 주택들이 있었지만 살기에 손이 많이 가고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한 옛 집들인 데다 골목이 좁아 차량 주차와 통행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주택답게 대지 면적이 상대적으로 넓어 집값 역시 우리가 감당하기에 덩치가 커 부담스러웠다. 우리가 집을 볼 즈음에는 구 시가지에 봉봉방앗간 등 옛 건물들을 현대식으로 개수한 특색 있는 카페들이 등장하여 이미 집값이 오르기 시작한 뒤였다.


주문진은 항구와 어시장 특유의 활기가 넘쳤지만 아이들과 마음 편히 지내기에는 주변 환경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지도를 보며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했다. 경포호 주변인 저동, 포남동, 초당동이 물망에 올랐다. 아내와 차를 몰고 흩어진 골목을 이곳저곳 둘러봤다. 동네 부동산 여러 곳에 들러 나온 매물들을 방문했다. 집이 괜찮아 보이면 역시나 값이 비쌌고 가격이 맞으면 집이 지나치게 노후했거나 거실이 다른 아파트와 마주하기도 했다. 몇 집을 둘러보고 나니 고단했다. 멀리 서울에서 몇 시간을 차를 몰아 온 여독 탓도 있을 테다. 잠깐 카페에 앉아 한숨 돌리기로 했다. 커피를 마시며 다시 지역 정보지를 뒤적거렸다. 아까는 미처 들리지 못했던 단지가 있었다. 매물 아래 적힌 부동산으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은 15분이면 달려올 수 있다 했다. 약속을 잡았다. 그 사이 미리 단지를 둘러봤다. 오래된 단지이지만 관리사무소가 일을 잘 하는 모양이었다. 단지 전체가 깨끗하고 쓰레기 분리 수거는 규모 있게 잘 돌아가고 정원도 정성껏 손질되어 있었다. 게다가 얼마 전 평창 올림픽을 맞아 단지 전체를 말끔하게 다시 칠했다. 곧 부동산 사장님이 도착했다. 매물 셋이 나와 있었다. 두 집을 보고 세 번째 마지막 집에 들어섰다. 앞서 집들은 낮은 층이라 앞 동에 볕이 가려 실내가 다소 어둑했는데 이번 집은 앞이 트인 데다 꼭대기 층이라 집 안이 훤했다. 방은 살림살이로 어수선했지만 창밖으로 저만치 앞들과 멀리 물결치는 산등성이가 보였다. 이 집이다, 우리 집은. 앞서 두 집보다 값이 조금 더 비쌌지만 맑은 햇빛과 전망을 사는 셈 치기로 했다.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서울의 엄청난 집값과 복비에 휘둘리던 우리에게 강릉 작은 집의 복비와 취등록세는 고맙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가 아이들과 하루라도 빨리 집을 사용하고 싶은 마음을 집주인이 눈치 챘던 모양이다. 예정했던 이삿날을 조금 당겨 설 연휴 이전에 집을 비워 주마고 했다. 우리는 평창 올림픽을 이 집에서 볼 수 있을 터였다. 이사 날짜는 더디 왔다. 새 차를 계약한 후 날을 꼽으며 차 나오기를 기다리는 심정에 비할까. 이제 강릉에 두 번째 우리 집을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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