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서 걸어 5분이면 작은 동산 입구에 이른다. 거울 공원이다. 울울창창 잘생긴 소나무들이 빼곡하다. 중앙에는 동네 주민들을 위한 운동기구들이 모여 있고 가장자리로는 소나무 숲을 둘러 오솔길이 나 있다. 빠른 걸음으로 5분 남짓이면 한 바퀴를 돈다. 솔잎으로 덮여 푹신한 황톳길을 걷는다. 호사스러운 길이다. 바닥에는 솔방울이 지천으로 깔렸다. 숲 이곳저곳에 어린 소나무들이 비쩍 마른 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소나무는 볕을 아주 좋아하는 식물이어서 하늘을 가리는 큰 나무 아래서는 자라지 못한다. 그 많은 솔방울 가운데 몇이 용케 싹을 틔우지만 하늘을 가린 선배 소나무들 때문에 해를 충분히 보지 못해 대부분 두어 해 내에 말라 죽고 만다. 다 큰 소나무들을 피해 겨우 빛이 드는 구석에 자리 잡은 운 좋은 어린 나무 몇은 한데 모여 제법 나무 꼴을 갖추었다. 몇 해가 지나면 저들 가운데 한 둘이 겨우 살아남을 것이다. 가혹하다. 강릉의 잘생긴 소나무들은 그런 경쟁을 뚫어 낸 강인한 녀석들이다.
소나무 숲을 걷다보면 저만치 너른 벌판이 내려다보인다. 하평들이다. 그 너머에는 새로 들어선 아파트가 몇 동씩 모여 있다. 강릉은 도시 내에 있는 농지가 적지 않다. 우리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에서 절대농지구역이라 했으니 앞으로도 오랫동안 저 풍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철마다 작물이 바뀐다. 붉은 흙이 드러났는가 하면 어느새 새파란 녹색 띠가 줄지어 선다. 감자 철에는 갓 캔 감자가 가득 담긴 노란 플라스틱 상자가 쌓인다. 어디선가 온 커다란 트랙터가 흙을 고르기도 한다. 계절 변화를 바로 알 수 있다.
아주머니 한 분이 “하하하, 하하하” 중얼거리며 걷는다. 묘한 웃음이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산책로를 도니 여러 차례 마주친다. 멋쩍었던지 “웃을 일 없는 세상, 이렇게라도 웃어야지” 혼잣말하며 나를 지나친다. 남편이 속을 썩이는지, 가족 누군가가 병중인지도 모른다. 소나무 숲을 걸으며 각자 마음 속 짐을 부려 놓는다.
소나무 숲 안에는 동네 사람들이 치성 드리는 마을 성황당이 있다. 새로 지어 세월의 더께 없이 반짝거리는 기와와 담이 아쉽지만 이 소나무 동산이 오래 전부터 인근 주민들에게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는 증거이다. 오솔길을 걷다 보면 장명등과 비석이 서 있는 무덤도 두엇 지난다. 흙 속에 누운 그들도 생전에 이 소나무 동산을 오르내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