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옛집

by 박상하

진고개로 이어지는 6번 국도를 따라 연곡을 지나고 있었다. 저만치 논 너머 거뭇하고 넙대대한 것이 보인다. 조선집이다. 야트막한 숲을 뒤로 두르고 남으로 향한 품이 아담했다. 아차, 지난번에 보고도 지나쳤던 그 집이다. 이번에는 한번 들러봐야겠다.


기어를 하나 내려 급히 속도를 줄이고 가던 길을 벗어나 농로로 들어섰다. 거창한 새 길이 뚫리며 곁에 흔적기관처럼 남은 옛길이 정겹다. 논밭 이곳저곳에 흩어진 집들 사이로 난 길들을 훑었지만 내가 본 집에 접근할 수 없었다. 웬일일까. 농로 한편에 차를 세우고 나와 두리번거렸다. 저기 풀로 뒤덮여 흔적이 희미한 길이 하나 눈에 띄었다. 이 길인가.


모퉁이를 도니 아까 멀리서 내가 본 집이 맞다. 아아. 멀리서 볼 때는 몰랐다. 오른쪽 지붕은 주저앉았고 툇마루 위의 문 둘은 모두 떨어졌다. 왼쪽 지붕도 뒤쪽이 흘러내리고 있다. 마당에는 잡풀이 가득해서 발을 들이기도 쉽지 않았다. 풀이 성근 쪽을 찾아 집 앞에 섰다. 숲을 담장 삼아 담이 없는 집이었다. 잘 보이는 기둥에 문패가 달렸다. 이 집에 와서 문패를 읽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전에 그 문패의 주인 얼굴을 마주했을 짝이다. 나무를 정성껏 깎아 만든 문패였다. ‘金興○’. 오른편에 둥근 철제 표식이 붙어 있다. ‘건축물일제조사 필 제80-8.07 20 명주군’(명주군은 1995년에 강릉시에 통합된 옛 행정구역이다) 왼편에는 빛이 바래 읽기 힘든 조그만 스티커가 보인다. ‘2000년 건축물 현황 조사’ 이 집 주인은 언제 세상을 떠났을까. 퍽 잘 지은 이 집은 왜 이렇게 허물어져 내리고 있을까. 열린 문 사이로 방안이 들여다보인다. 저만치 다락에 잘 개어 포갠 이불도 보인다. 천장 한쪽은 무너지고 벽지가 떨어져 내렸다. 내 앞으로 찢겨 흘러내린 벽지를 살펴본다. 벽지 예닐곱 겹이 포개어 있다. 제일 아래는 누렇게 변한 쇼와14년 1월의 신문이다. 그렇다면 이 집은 적어도 1939년 이전에 지어진 셈이다. 풀이 무성해서 옷을 버릴 각오 없이 집 뒤편에 들어서기는 무리였다. 발 아래가 보이지 않아 혹 있을지 모르는 뱀도 신경 쓰였다.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사랑받던 집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툇마루 오른편에는 굵은 앵두나무에 빨간 앵두가 가득 달려 있었다. 하나를 따서 입에 넣었다. 시큰하니 달다. 잘 익었다. 내가 더 어릴 때 이곳에 왔다면 여러 개를 따먹었겠지만 이제는 바라보는 편이 더 좋다. 마당 오른쪽 두릅나무에는 새순이 올라온다. 저 순을 잘라 데쳐 맛있게 먹었을 집 주인은 더 이상 여기 없다. 집 오른편에는 오래 묵어 시커먼 결이 당당하게 드러난 널판이 붙은 별채가 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고 80년을 더 견딘 집이 쓸쓸히 마지막을 맞고 있었다. 조선집은 주인이 세상을 떠나면 금세 이렇게 뒤를 따르는가. 후손들은 왜 이 집을 돌보지 않고 내버려 두었을까. 공부 많이 하여 바다 건너 외국에 살고 있을까. 이렇게 사라져 가는 집들이 전국에 얼마나 될 것인가. 집주인이 오랫동안 정성껏 부쳤을 밭과 논을 저만치 마주한, 볕이 잘 드는 마당에서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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