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졸업

episode 14. 4학년

by 상희

졸업 전시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다들 피곤에 찌들어 눈을 껌뻑거리며, 완성한 작품(그러나 사실 물감이 온전히 마르지 않아 건드리면 큰일 난다)을 복도에 쭉 깔아놓았다. 형형색색의 작품들이 복도를 가득 메웠다. 교수님은 찬찬히 걸어가며 작품들을 살피셨고, 그 뒤를 따라 학생들도 서로의 작업을 구경했다. 전시 전 급히 수정해야 할 부분을 짚어주시고, 이미 완성된 작업은 어떻게 디피할지 논의하였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마무리되자, 교수님은 학생들을 보며 담담하게 말씀하셨다.


'다들 고생했으니, 미리 말할게요 여러분들.'


교수님은 빙그레 미소 지으셨다. 이미 어느새 4학년이 된 학생들을 바라보셨다. 조금의 침묵이 흘렀다.


'모두 졸업 축하해요.'


졸업, 드디어 졸업인 것이다.

4년의 기간을 마무리 짓는 미대의 졸업이...

각자의 표정을 짓는 학생들 사이로, 나도 덤덤히 미소 지었다.



4년의 끝 지점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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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형성_260 x 162 cm / 경계, 그들의 관계_162 x 130 cm / 세워진 관계들_162 x 97 cm


시작은 언제나 설레고, 끝은 언제나 허무한 느낌이 든다. 이렇게나 시간이 빠르게 흐를 수가 있나?

돌이켜보자면, 미대에서 보낸 4년은 결코 쉬운 기간이 아니었다.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골머리를 쓰기도 했고, 색이 마음에 안 들어 그리던 작업을 뒤엎기도 했고, 재료비가 부족해서 서글퍼지기도 했고, 감이 잡히지 않아 에스키스만 왕창 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교수님께 혹평을 들어 우울해했던 나날도 있었다. 내가 정말 그만큼 그리고 싶은 게 맞는지, 내가 원하는 그림이 맞는 건지를 수백 번 곱씹으며.. 그리고 미대를 졸업한 먼 훗날 브런치에 글로 정리하면서도, 꽤나 고생하면서 대학에 다녔구나 싶어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대에서의 끝 지점에 도달하자, 나는 그럼에도 미대 생활이 내게 있어 좋은 경험이었음을 인정했다.

함께 있는 좋은 사람들과, 4년 간 작업의 최종 결과물인 졸업 작품을 보며.. 포기하고 싶었고, 도망치고 싶었던 그 순간들을 견뎌낸 끝에 나는 떳떳하게 혼자 힘으로 그림을 그렸고, 결국엔 그림 앞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경험을 통해 배운 그 힘을 알게 된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

표현하고 싶은 바를 표현해 내는 능력,

사소하게는 조화롭게 배치하는 방법이나 인체 구조를 읽는 방법까지..

그리고 가장 크게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결과를 내는 나를 발견한 게 미대에서 배운 최고의 힘이었다.



드디어 졸업, 앞으로 나아가는 단 한걸음

KakaoTalk_20241208_233326629.jpg 졸업 전시 전경


졸업 전시는 6일 동안 진행되었다. 졸업 전시를 찾아와 준 가족, 친구들의 옆에서 재잘거리며 작업을 설명했다. 정말 졸업 축하한다는 말을 들으며, 이젠 대학 생활이 끝나가고 있음을 느꼈다. 졸업에 대한 설렘과 미래에 대한 걱정 사이에서 4년 간의 기간을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젠 얼마 남지 않은 그 기간이 아쉽다. 그럼에도 남은 날들은 웃으며 보내고자 노력했다.


'졸업 축하해 줘서 고마워.'


미래는 항상 불확실하고, 그 미래로 내딛는 발걸음을 떼기 전엔 늘 두려운 마음이 올라온다. 입시를 준비했던 고등학생의 그때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가 불안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또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가 다가오고 있다. 미대를 졸업한 후 어떤 삶들이 펼쳐질까? 또 좌절하고, 낙담하고, 절망하는 그런 순간들이 찾아오게 될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난 물감이 채 다 닦이지 않은 내 손을 바라봤고, 거대하게 자리 잡아 내 곁에 버티고 있는 졸업 작품을 바라보았다.



결과들을 손에 모아놓고 보고서야, 나는 내가 열심히 살았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제야, 나 자신이 좋아졌다. 난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는데, 왜 그동안은 날 믿지 못했을까. 난 좀 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었는데, 왜 그동안은 내게 사랑을 주지 못했을까.


보이는 것을 그리는 게 아닌 무언가를 표현하고자 골몰했던 1학년 때부터, 주체적으로 그림을 그려나가야겠다고 다짐한 4학년의 시기 동안 이만큼 성장한 나를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 앞에 선보인 나의 졸업 작품은 그러한 성장을 증명하는 증거다. 그렇기에 항상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더라도, 나는 나를 믿고 또 다른 성장을 줄 미래를 기대해보고자 한다. 정말로 사회에 나아가는 단 한걸음을 내딛기 전, 대학에서의 마지막을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전했다.


졸업 전시, 그리고 졸업 축하해.

여기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해줘서 고맙고,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네 미래를 응원해,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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