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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희 Nov 26. 2024

한계로 밀어붙이다 보면

episode 12. 4학년

'다시 해와.'

'시도를 할 거면 제대로 해.'

'2주면 충분히 더 많이 그려올 수 있는데, 왜 이 정도만 했어.'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욕심이 나서 그래.'


B 교수님의 지적이 끝없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위한 말들이었더라도, 못하겠다는 생각에 하기가 싫었다. 나쁜 평이 나올 것이라 예상되니까 하질 못하겠어.

지쳐서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만, 이런 관심은 정말 원하지 않아.

그만 저에게 욕심내줘요, 제발...



그림을 그리는 동기가 나에게 없다

4학년 시절 실기실 풍경


A 교수님과의 수업에선 별다른 피드백 없이 진도가 척척 나갔지만, B 교수님과의 수업에선 자꾸만 제자리걸음을 걷는 것 같았다. 이렇게 그리고 저렇게 그려봐도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지가 않아 무기력했다. 가장 무기력했던 것은 무엇이 좋은 그림인지 모르겠다는 것 때문이었다. 일련의 과정을 겪고 있는데도 내가 발전하고 있는 것인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것인지를 몰랐다. 그리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지만 전혀 나아지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내가 즐기면서 하고 있지 않았으며, 교수님이 떠미는 힘으로 인해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었다. 밤낮 없이 시간만 나면 실기실에 가서 그림을 그렸지만, 더 멋진 그림을 그려내고 싶다는 내 욕심은 없었다. 그림을 그리는 동기가 나에게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게 가장 문제였다. 열심히 행위하고 있어도 생기가 없었고 마음이 텅 비어있었다. 머릿속엔 'B 교수님께 만약 좋지 않은 성적을 받게 된다면, 이번 학기 장학금은 어떡하지?', '이번 주에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그 생각뿐이었다. 자꾸만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두려움 때문이 되어간다. 4학년 썼던 일기에서도, 그러한 마음이 드러났다.



이게 나의 최선이었다.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더 열심히 할 힘이 없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 여기까지가 내 한계가 되는 걸까?

이게 나의 한계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럼 내가 포기하고 뛰어오르는 정도를 스스로 줄여버릴까 봐 불안하여, 최소한의 생각으로만 뛰어오르고 있다. 최소한의 생각으로 뛰어오르는데, 내가 뛰고 있는 방향이 하늘을 향한 것인지, 바닥을 향한 것인지도 모르겠는 상태로, 그냥 나보다 더 높이 뛰는 사람들이 많을까 봐 계속 뛰고만 있다. 뛰어오르고만 있다. 이 쉼 없는 뜀박질이 어딜 향할지는 나도,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지쳐 한계에 닿아가고 있는데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두려움이 나를 떠밀고 있는데, 나는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서야 하는 걸까?



즐거움으로 만든 결과, 두려움으로 만든 결과

A 교수님 수업의 최종 과제물


한 학기 동안 그렸던 작업들을 벽에다가 전시해 놓으니 꽤나 그럴싸했다. A 교수님은 내 작업들 중 어떤 작업이, 어떤 면에서 좋았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하셨다. 그리고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는 나의 여러 작업 중 어떤 작업이 좋아 보이는지를 물어보기도 하셨다. 짧은 평가가 끝나자, A 교수님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미소 지으셨다.


'재밌는 작업들이 정말 많네. 디피해놓으니까 더 좋다, 고생 많았어요.'


A 교수님의 크리틱은 가볍게 끝이 났다. 그리고 B 교수님의 크리틱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B 교수님 수업의 최종 과제물


'와 결국엔 해냈네. 내가 엄청 못살게 괴롭혔거든.'


B 교수님은 아주 즐거워하셨다. 그리고 자신이 나를 괴롭혔다는 사실을 인정하셨다. 정말 날 괴롭힌 게 맞구나? 란 생각에 순간 울컥했다. B 교수님은 마치 청중들에게 자신의 성과를 과시하듯,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정말 몇 번을 바꾼 거야. 초등학생 5학년이 그린 것 같다고 한 그림도 있었어. 근데 그 과정이 하나도 버릴 게 없어, 너무 좋은 결과이자 시작이야. 정말 잘했다.'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B 교수님도 학생들도 모두 그렇게 축하해 줬다. 그들의 칭찬에 감사하다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울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밝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마음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는 걸 알았다. 이게 내가 원했던 결과가 맞나? 왜 교수님의 욕심에 나를 이렇게 모질게 몰아세우셨던 걸까? 결과를 냈는데도 전혀 기쁘지가 않았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혹평을 피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뿐..


아이러니하게도 그림을 즐겁게 그려나가도 좋은 결과가 나오고, 두려움에 떨며 그려나가도 좋은 결과가 나왔다. 결과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내 삶이라고 했을 때, 결과를 만든 그 과정이 나에게 어떻게 기억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경험이었다. 즐겁게 그림을 그렸을 땐 내가 오로지 그 과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에 떠밀려 그림을 그렸을 땐, 과정 중에 내가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성공' 혹은 '실패' 뿐이다. 그리고 그 평가 또한 스스로 내릴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는 결과만을 기다리며 그 모진 과정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의 그림에 있어, 내가 주도권을 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작업에 대해 누구는 호평을, 누구는 혹평을 있지만 이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대개 나는 여러 사람이 호평을 하더라도 단 한 명의 혹평에 마음이 쓰이는 사람이었다. 다음 학기는 졸업 학기였고, 정말 미대에 있어서 마지막 작업을 내야 했다. 그때는 이번처럼 휘둘리지 않기를, 과정들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두려움 때문이 아닌, 내가 정말 그리고자 하는 나의 작업에 몰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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