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1. 4학년
4학년이 되었다.
입학한 게 엊그제 같았는데, 순식간에 4학년으로 변모하는 것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느껴졌다. 앞치마를 두르고 지친 표정으로 작업 앞에 서던 선배들이 후배들을 바라볼 때 이런 마음이었겠지 싶다.
'멀게만 느껴지지? 너희도 머지않았어'
저학년 시절 4학년이 된 내 모습을 상상하자면, 작업에 대한 고민 수준도 깊고 마음가짐도 남달라 질 것 같았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나는 그대로 나였고, 그림도 그대로 내 그림이었다.
하지만 같은 나여도, 내 작업에 대한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기도 했다. 어찌 보면 재밌는 부분이다. 교양 과목이나 복수 전공 과목에서 시험을 볼 땐 기준이 정말 명확했다. 1번이 답인데 5번을 체크하면 틀린 거고, 꼭 들어가야 하는 내용이 있는데 그 내용이 들어가면 맞은 거다. 그리고 공부한 노력에 대체로 비례하게 점수를 받았었다. 하지만 미대에서의 평가는 달랐다. 대체로 인정하는 좋은 작품의 기준이 있지만 그 기준이 무엇인지 설명하기가 어렵고, 어중간한 작품들은 평가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작품 수가 많다고 꼭 좋은 점수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내 작업을 재밌어하는 교수님이 있는 반면에, 관심 없어하는 교수님도 계셨다.
좋은 성적과 장학금을 받는 것이 중요했던 나에게 교수님의 평가는 종잡을 수 없었다.
그게 나를 불안하게 했다.
좋은 교수: 작품의 수준이 정말 높아.
A 교수님을 좋은 교수라고 칭하는 것도 사실 이상한 일이다(많은 선배, 동기들이 'A 교수님이 좋은 교수라고?' 하며 반문할 것이다). 변명하자면 사실 교수는 좋은 교수, 나쁜 교수가 없다. 그리고 나에겐 좋은 교수였어도, 남에겐 나쁜 교수일 수도 있다(실제로 그러기도 했다). 하지만 내 작업에 관해 수없이 쏟아지는 평가들을 듣는 와중에, 어떤 교수를 '좋은 교수'로 삼고 나아갈 것인지를 정해야 했다. 내 작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A 교수님은 그런 점에 있어서 내겐 좋은 교수였다.
당시 나는 동양화 재료에 관심이 많았고, 주로 먹을 이용하여 이것저것 실험하고 있었다. 또한, 한동안 그리지 않던 사람을 다시금 그리기 시작했다. A 교수님은 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시다 흥미롭다는 듯 미소 지으셨다.
'인체 형상에 대한 해석이기 때문에 연습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데, 거듭해서 하니까 표현력이 점점 좋아진다. 작품의 수준이 정말 높네. 이 작업은 그렇게 흔한 작업은 아냐. 얼굴이야 누구나 그릴 수 있지만, 이렇게 개성 강하게 그려내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거니까. 거듭하면 할수록 더 좋은 작업이 될 거야. 쭉 진행해 봐.'
그렇게 A 교수님과의 짧은 면담이 끝이 났다. 사실상 A 교수님은 나의 작업에 큰 피드백을 해주진 않았지만, 내가 불안감을 덜 느끼며 작업에 몰두할 수 있도록 일조하셨다. '표현력이 좋아진다', '개성이 강하다'라는 그 말이 작업할 때 나를 지탱해 주는 듯했다.
나쁜 교수: 초등학생이 그렸니?
'그 교수님이 또 애를 울렸대.'
B 교수님에 대해 들은 첫 일화였다. 성인이 학교에서 엉엉 운다는 것이 말이 되나? 싶었던 나에게 B 교수님과의 면담 후 울었다는 선배의 일화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어떤 면담이었길래 다 큰 성인의 눈물이 찔끔 났을까 싶어, 다가오는 면담 시간이 긴장되기도 했다.
B 교수님은 내가 준비한 작업물들을 무덤덤하게 바라보았다. 눈치가 빠른 나는 그 표정을 관찰했고, 그러다 교수님의 눈살이 찌푸려지자 부정적인 평가가 몰아쳐올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한숨과 함께 B 교수님과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B 교수님은 빠른 속도로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경험과, 여러 조언들을 했지만 결국 뇌리에 남는 건 내 작업에 대한 강렬하고도 부정적인 피드백이었다.
'너무 술수 쓰는 것 같아. 작품이 그냥 조경할 때의 돌 같아, 예쁜 돌.'
'초등학생, 초등학생 5학년 정도가 그린 그림 같아.'
'이건 망친 거지, 지금 망쳐야 나중에 이거 또 안 하지.'
초등학생이 그린 거냐는 B 교수님의 말은 지금까지도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말 자체뿐만 아니라 B 교수님의 불쾌하다는 표정도. 2주간 준비한 작업에 대한 한줄평이 그렇게 남아버리자, 나는 성인이 왜 학교에서 엉엉 울 수 있는지 깨달았다. 감정을 꾹 누르며 5분 남짓의 면담 기간을 견디다가, 면담이 끝나면 도망치듯 화장실로 달려가 눈물을 훔쳤다. 그래도 남 앞에서 울지 않는 것은 나에게 남은 일말의 자존심이었다. 자존심은 지켰지만, 어떻게 하면 초등학생 5학년에서 대학생 4학년으로 작품 수준을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너무 무겁게 다가왔다.
하지만 B 교수님도 누군가에게 좋은 교수였다.
공통의 적은 없다.
작업에 따라 누군가에겐 좋은 교수, 누군가에겐 나쁜 교수. B 교수님을 좋아하는 학생들도 많았기에, 시원하게 '말씀하시는 게 좀 너무하지 않아?'라고 동기들에게 B 교수님 욕을 할 수도 없었다. 만일 얘기하면서 훌훌 털어냈다면, 4학년이었던 내가 꾹 참다 흘린 눈물의 양이 좀 줄었었을까?
이상한 나: 그 모든 게 나인데..
물론 지금 와서 작업들을 훑어보자면, 초반에 A 교수님께 제출했던 과제들의 수준이 B 교수님께 제출했던 과제들보다 더 좋다는 게 납득이 된다. 다만 A 교수님 앞에 서서 극찬을 받던 사람도, B 교수님 앞에 서서 혹평을 듣던 사람도 모두 같은 시기의 나였다는 것이 그때의 나에겐 혼란스러웠다.
수준 높은 작업을 할 줄 아는 사람이면서도 초등학생 같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 여러 실험들을 재밌게 해 나가는 사람과 성적이 낮게 나올 것 같아 불안감에 떨며 색을 칠하는 사람이 모두 나였다. 잘 나아가고 있다고 나를 지지해 줄 수도, 오히려 뒤로 가고 있다고 나를 꾸짖을 수도 없는 기묘한 중간 지점에 서 있었다. 내 작품에 있어 A 교수님을 좋은 교수로 삼고 나아가고자 했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눌러 내리는 B 교수님의 피드백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나에 대한 평가가 일관되지 않을 수 있는 건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불일치 자체가 싫었던 것 같다. 온전히 칭찬받고 싶고, 때론 온전히 비난받고 싶고. 그래야 불확실하고 어디로 나아가는지 나조차도 종잡을 수 없는 작업세계를 스스로 평가할 수 있게 되니까.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작업으로 보이긴 싫으니까.
나에 대해 엇갈리는 반응 속에서, 그렇담 그때의 나는 내 작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었을까?
A 교수님께 칭찬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해하고,
B 교수님께 혹평을 들으면서도 눈물을 꾹 참고 작업 앞에 서던 나는
내 작업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