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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희 Nov 12. 2024

미대 졸업해서 뭐 해먹고 살지?

episode 10. 미대생의 진로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였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작은 아빠는 그러고 보니 궁금하다는 듯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미대 졸업하면 뭐 해, 뭐 해먹고 살아?'


그 순간 친척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좋은 대학 갔다고 좋아한 건 한순간이었고, 이제 그다음은 뭐니?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눈은 웃고 있었지만 입이 달싹거렸다. 


'다들 너무 달라요. 근데 보통은 계속 그림 그리죠.'


'... 그렇구나.'


더는 묻지 않으셨어도 '그렇구나'라는 말엔 뼈가 있었다. 그림 그려서 어떻게 벌어먹고 살겠다는 거야? 그렇게 돈 써서 미술 배우더니 결국엔 저렇네, 그런 뜻일까 봐 움츠러들었다. 한편으로 '뭐 해먹고 살아?'는 스스로에게도 계속 던져온 질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결국은 일정한 수입으로 연결될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진로로 연결될 수 있는가? 고학년이 될수록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고, 지금은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사라진 선배들.. 작가 해도 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

'회화적 판화' 과제작


진로에 있어 고민이 들 땐, 같은 과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게 안전하다. 하지만 도대체 졸업한 선배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선배들이 어떤 진로로 나아가는지를 알고 싶어도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간혹 뉴스로 같은 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이 모여 전시회를 한다는 소식은 전해 듣는데, 실제 어떻게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당연스레 작가가 되기 위한 수순을 밟고 있는데, 작가가 되면 어떤 삶을 살게 되는가? 게다가 미대 특성상 많이들 중간에 휴학을 하여, 바로 앞 선배들에게 물어보기도 어려웠다. 

앞서 간 선배들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고학년이 될수록 체감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정말 다른 개념이었다. 직업으로 가게 될 땐 그 직업만의 장점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단점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려나가는 건 작가로서의 장점이었지만,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는 내가 작가의 직업을 감당할 수 있는가는 확신이 안 섰다.

직업으로 삼았을 때 벌이가 일정치 않더라도 난 계속 그림 그리는 것을 사랑할 수 있는가? 

시간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성공한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난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가?

그에 대해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교수님과의 개인 면담 시간 때 이런 고민을 나누었다. 


'돈 안 벌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 


실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교수님은 아주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두려운 거 때문에 작가를 못할 것 같다고 하는 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 작가란 직업도 좋은 점이 많아. 일단 늦게 일어나도 되잖아.'


교수님의 대답은 아주 유쾌했다. 그 유쾌한 대답에, 더는 물어볼 수가 없이 면담이 그렇게 끝이 났다. 



미대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진로


내가 보아온 미대생들이 많이들 가는 진로를 정리해 봤다. 주로 내 동기나, 주변에서 본 선배들이 선택했던 진로에 관한 것이다. 경험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참고용으로만 보면 좋을 것 같다. 


1. 작가 활동 (+부수입)

   첫 번째는 미대 진로를 이어가 작가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룹전, 개인전 등의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고 때론 판매로도 이어진다. 전시가 가능하려면 자신만의 작품세계가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작품 수도 충분히 많아야 하기 때문에, 대개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혹은 유학을 가서 작업을 지속한다. 대학원에 가지 않는 경우엔 작업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같이 공간을 나눠 쓸 사람을 구해서 작업실을 마련하기도 한다. 간혹 미술관의 입주작가로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는 쉽지 않다. 

   정말 드물게 신진작가로서 바로 이름을 알리고, 쉼 없이 작품 판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내 선배가 그러했다). 그러나 보통은 천천히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료비, 작업실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미술학원에서 강사활동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미술학원은 시급이 센 편이라 꽤나 짭짤하게 돈을 벌 수 있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다.  


2. 미술 교육 관련 진로

   두 번째도 많이들 가는 진로 중 하나인데, 학교에서 근무하는 미술선생님을 꿈꾸는 것이다. 예고에 다녔던 동기들이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 선생님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경우가 꽤 많았던 것 같다. 그 이외에 일반고에서의 미술선생님을 꿈꾸는 경우도 있지만 임용 합격률이 쉽지 않은 편이다. 대개 대학을 다니면서 교직이수를 하거나, 대학 졸업 후 교육대학원의 미술교육전공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3. 미술사 관련 진로

   세 번째는 미술사와 관련된 진로이다. 전공 수업 중 미술사와 관련된 수업이 있었는데, 이를 흥미롭게 듣는 동기들이 몇 있었다. 미술작품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그에 대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을 좋아하는 미대생들이 미술사를 복수 전공해서 미술사학과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기도 한다. 미술사로 진로를 삼으려면 대개 석사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미술사학과는 대학원 중에서 경쟁률이 치열한 편으로 알고 있다. 미술사에 관심이 많은 미대생들은 보통은 박물관/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어 하고, 큐레이터를 꿈꾸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4. 회사 취업

   네 번째는 회사에 취업하는 것으로, 디자인 계열 회사의 취업이 흔한 편이다. 내가 속한 전공은 디자인 전공이 아닌 순수 회화 쪽이었음에도 많이들 디자인 회사에 취업을 하곤 했다. 회사 취업은 정말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공모전도 나가고, 주어진 프로젝트를 해내는 것을 좋아하는 동기들은 취업하고 나서도 만족도가 높았으나, 대학을 졸업하고 확신 없이 회사에 취직하는 경우엔 눈물의 밤을 보내곤 했다. 


5. 그 외의 진로

   이 경우엔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롭다. 타투이스트부터 시작해서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상품으로 파는 등 그림과 어느 정도 관련된 진로로 나아가기도 하지만, 1학년 때부터 일찌감치 미술을 포기하고 전과하거나 바로 복수 전공하여 다른 진로로 나아가는 경우도 흔하다. 


여러 진로의 방향성들을 고려하며 고민에 빠졌다. 이 시기가 그런 시기인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가 어디든 다 들어갈 수 있는 퍼즐 조각인 것 같으면서도, 막상 넣으려고 하면 어느 곳에도 맞지 않는 것 같은. 

나는 결국 어떤 진로로 나아가게 되며,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인가?

미래가 주는 불안감은 늘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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