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떠나가버릴지라도

episode 11.

by 상희

째깍째깍

자리에 앉아 시계를 흘끗 바라본다. 정각하고도 5분이 더 지났다. 아니겠지, 5분 정도는 늦을 수도 있으니까. 지하철이 연착되었을 수도 있고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본다. 그러다가 10분쯤 지났을 무렵, 그제야 나는 시계를 보는 걸 멈췄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 내담자는 오지 않을 거야.'


결국 나도 상담 수첩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빈 상담실을 가득 메운 침묵이 무겁다. 갑자기 떠버린 시간에, 컴퓨터 앞에 앉아 내담자가 안 온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급한 일이 생겼을까? 아님 저번 상담에서 나눴던 얘기가 힘들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나 때문일까?



모든 것이 내 탓인 것 같을 때


... 너 때문이야.


난 참 자책을 많이 하는 상담자이다. 생각이 많고,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파고드는 성격 탓도 있다. 내담자와 대화할 땐 감정이나 생각을 따라가기 수월한데, 내담자가 관계를 단절해 버리면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아 영문 모를 기분에 빠져든다. 그러면 결국, 해소되지 않은 엉킨 생각들이 조금씩 풀려 나온다. 타고 타고, 멈출 줄 모르고 흘러간다. 직전 상담이 어땠는지, 어떻게 개입했었는지, 내담자 표정이 어땠었는지...


'무슨 말이 내담자에게 남았을까?'

'상담 때 내 표정은 괜찮았던가?'

'나의 어떤 점 때문에, 내담자가 노쇼한 걸까?'


상담자에게 내담자의 '노쇼'는 단순히 당일 상담이 취소된 것이 아니다. 질문의 시간이자, 반성의 시간이 된다. 내담자가 노쇼하면 직전의 상담을 되짚어보며, 노쇼의 이유를 검토하는 것은 상담자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대개 내담자가 안 오는 것에 상담자로서 기여한 잘못은 없었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하지만 너무 잘못에만 빠지게 되면, 깊은 자책으로 이어지는 게 초보 상담자로서의 문제다. 자책하다 보면 의욕을 잃고, 상담자로서 무능한 느낌이 든다. 회복하고 싶었던 내담자를 내 손으로 떠나보낸 듯한 깊은 상실감으로 빠져든다.


머릿속에 질문들이 끊이지 않는다. 내가 다르게 했다면 내담자가 계속 상담에 왔을까?

... 다른 상담자였다면, 이 위기를 더 잘 헤쳐나갔을까?


반성해야 할 건 '상담'인데, 어느 새 생각이 경로를 이탈한다. 질문의 화살표가 나를 향하고, 방향이 틀어졌단 걸 알지만 되돌리기 어렵다.


'나 때문이야.'

'내가 상담해서 그래.'



놓아야 할 것과 붙들어야 할 것


"선생님, 그만."


한창 노쇼로 종결되는 상담이 늘어날 때, 우울한 표정으로 앉은 나를 향해 슈퍼바이저가 말했다.


"자꾸 혼자 상담하려 들지 마. 노쇼는 내담자의 선택이기도 한데, 내담자의 몫까지 자꾸 선생님이 가져가려고 드네."

"... 그렇지만 자꾸 노쇼하는 내담자가 느는걸요. 제가 잘못 상담하고 있을 수도 있잖아요."


푸념하는 내 말에, 슈퍼바이저는 단호하게 말을 이어갔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놓아줘야지. 선생님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만 통제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만 자책해."


그 말을 듣자, 멈칫하곤, 자책만을 하던 생각의 고리가 멈추기 시작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까지 통제하려고 했던 걸까? 그리고 결국엔 떠나간 내담자를 이해하기보단, 모든 책임을 나에게 묻곤 상황을 보려 하지 않았던 걸까? 나를 괴롭히던 끝없는 생각들이 끌고 온 감정들이 사그라들며, 상황이 이성적으로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내담자가 노쇼하자, 상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제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해 절망하고 자책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가 실수한 부분이 있다면, 이를 다음 상담을 위한 교훈으로 삼으면 된다.

내담자가 떠났다면, 그 선택을 존중하면 된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 다시 내담자가 돌아온다면, 그땐 준비된 마음으로 기쁘게 맞이하면 된다.

그렇게 나는, 상담자로서 무엇을 놓고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지를 배워간다. 따라서 이번 오답 노트는 다음과 같다.


모든 걸 붙들 수는 없다. 상담자에게도, 놓아줄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


떠나간 내담자는 말이 없고, 상담자만이 남게 된다.

완결 지어지지 않은 관계 속에서 때론 상담자로서 허우적거리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이야기의 완결을 조용히 기대한다.

놓아준 이야기 속 주인공이 언젠가 돌아오길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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