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처음
대학생 남편과 결혼한다 했을 때 아빠는 세가지를 물었다.
생활비는 어떻게 할 건지
집은 어떻게 할 건지
앞으로 계획은 뭔지
사실 그 3가지 전부다 내게 별 문제는 되지 않았다
내가 일하고 있으니 생활비는 그냥 내가 내면 된다 생각했고
집은 그의 집에 들어가, 그가 살던 그 방에서 살면된다고 생각했다 (귀여웠던 '나')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지만 그때는 '집이 뭐가 그리 중요한가' 했다.
앞으로의 계획도 나의 원대한 계획이 있었으므로
남자 삶의 계획이란, 내게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아빠는 아들 장가 보내면서 집한채 해줄 능력이 안되냐'며
시부모님을 저격했다. (물론 이 말은 나에게 한 말)
그냥 그 말 자체가 문제가 되었다.
내 마음에 콕 박혀 아빠에게 쏘아붙혔다.
시부모님 방식대로 세상을 열심히 살아온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아빠의 그 말에 나는 화가 났다.
그래서
'아빠 아들 장가보낼때나 그렇게 하세요' 하고는 아빠에게 나쁜딸이 되었다.
어쨌든 생활비이야기도 집 이야기도 앞으로의 계획 이야기도 쏙 들어가 버렸지만
시부모님은 8천만원을 만들어 전세자금을 대주셨다.
덕분에 나는 3천만원 딸랑 받아 결혼이란걸 준비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남녀 반반 하는 결혼이 흔하지만 그때만 해도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가 아니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3천만원으로 18평짜리 집을 채우기만 하면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전쟁같은 결혼준비가 시작되었다.
나는 결혼식 자체에도 결혼 자체에도 별 관심이 없었고
그저 인생과업중 하나로밖에 이 시간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지 뭘 보러간다던지, 준비를 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예식장도 가장 큰 곳으로 한번에 계약했고 주차장도 그냥 돈을주고 시장 주차장을 사버렸다.
하필 결혼식이 장날이라 지인들이 주차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꼈고, 나는 모든걸 돈으로 해결했다.
그때 내 나이 겨우 스물 다섯 이었다.
나는 낭만이 없었다
예식장에서 추천하는대로 그냥 심플하게 하라는대로 모든걸 다 계약해 버렸다.
결혼식 날이 다가 올 수록 뭘 이렇게 따져가며 결혼을 하는지 준비할 것도 없는데 왜이렇게 복잡하게 안내하는지 짜증스러웠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정말 그냥 몸만 정해진 날짜에갔고
결혼준비같은 준비를 해보지 않았다
그게 전쟁의 시작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결혼과정에서 왜 파혼을 하는지 몇번이고 느끼면서 나는 결혼식을 기다렸다.
결혼식 날짜를 잡고나서는 말이 많았다.
임신했냐, 왜 갑자기 결혼하냐, 별 소문이 다 떠돌았다.
그떄 나는 싸이월드라는 블로그에서 투데이 숫자가 평균 1만명 정도 되는 상황이었는데
결혼식에 대한 소식도 블로그에 알렸다.
'저 결혼합니다' 하고 글을 썼고, 친구들이 하나 둘 진짜 하냐고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청첩장 같은 것도 없었고, 누가 올지 안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결혼식 날짜는 다가왔다.
참 소꿉장난 처럼 결혼했다.
참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학생 남편과 결혼한다고 했을때 많이들 말렸지만
내 귀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딸, 시집 잘보냈다,,, 는 말이 듣고 싶은 부모님의 꿈이 사라지는 것 처럼
우리 엄마아빠는 돌아가면서 한숨푹푹... 조용할 날이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결혼식이 코앞인데
딸 인생 방해할 수 없으니
그냥 잘 살아라.... 3천만원이 끝이다!!! 하면서 나를 보내기로 결정하셨다.
그날 부터 나의 혼수준비는 시작되었는데
지금 다시 적으면서도 아주 씸플했다.
그 과정을 들으면 정말 까물어칠수도.... (다음편은 혼수 준비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