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워킹맘 놀부며느리 Mar 30. 2024

아픈지 두 달 만에 요양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그 말을. 

지금 내가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온 가족에게 같은 마음이었다. 


할머니는 집에서 허리를 다치고, 병원에 입원한다음

치매로 인해 병원내 생활에서 고생을 하다가 

요양병원으로 옮긴지 얼마되지 않았다. 


갑자기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게 무슨말인지.


아빠는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엄마도 울고 싶었지만 아빠 때문에 마음을 부여잡아야 했다.


분명 얼마전까지만 해도 

할머니가 요양병원 생활을 하면 한 가정에서 얼마의 부담을 해야 하고 

10년정도도 요양원에서 지낸다고 하더라. 

가정에서 있는 것은 너무 위험한 상황이니 이제는 병원에 의지하는편이 낫겠다고

우리가족은 함께 협의한 부분이었다.


그런데 요양병원에 들어간지 2주만에 마음의 준비라니.

나는 무슨일인지 도저히 이해도지 않았다. 


요양병원측의 말은 

할머니의 여러 장기가 이미 아픈 상태였고, 여러가지 과정을 거치는 단계에서 

굉장히 빠르게 악화되어 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온 가족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연락이왔다 


그런데 막상 병원에가서 할머니를 보니 그때그때 상황이 달랐고 

오늘,내일 위독한 것에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이 되었다. 

그래서 먼저 아빠와, 엄마, 고모가 할머니를 찾았다. 

얼마나 울었을지. 마음이 아팠을지 짐작되지 않을 만큼 

우리가족 모두에게 어쩌면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이므로 

나는 그날의 감정을 묻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삼촌들의 면회가 있었다.

나도 가고 싶었지만 하루에 너무 많은 면회는 어렵다는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다음날 가기로 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교회에 갔다가 곧장 할머니를 뵈러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할머니 손을 붙잡고, 눈이나 마주치며 그렇게 있다가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할머니 병실에서 마주한 할머니 모습은 

내가아는 할머니 모습이 아니었다. 

그냥,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숨쉴 수 밖에 없는 그런 모습 

아무런 저항도 반응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래서 온 가족이 해줄수 있는 것도 없는 상태.

눈도 뜰 수 없는 상태였다. 


믿기지 않았다. 

내가할 수 있는 것은 없었고 

할머니 손을 붙잡고 나는 기도했다. 


우리 할머니, 좋은 곳에 편안하게 가게 해달라고. 


나는 차마 소리내어 이 말을 할 수 없었다

할머니더러 얼른 가라고 말하는 것 같아

그저 할머니 너무 이쁘다고, 할머니 화장이나 해줘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숨쉬는 것이 너무 힘들어 보였고, 

호흡이 빨라지자 간호사들이 달려왔다. 

할머니는 내가 말할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듯 했다. 

나는 감은 눈을 억지로 벌려, 할머니 눈을 봤다. 

할머니는 눈뜰 힘은 없었지만 눈을 요리 조리 움직이며 나를 쳐다 봤다. 


이어,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그게 할머니와의 마지막 이었다. 


좀 더 있고 싶었고, 

아빠도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병원규정상 그건 어렵다고 했다.

우리도 병원에 외부인이들어와 간병하는 것이 이제는 조금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알기에 

30분 정도 면회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가 오늘, 내일 하실까?

그말을 차마 가족과 함께 나눌 수 없었다. 

하지만우리는 그렇게 서로 마음을 알아차리는 중이었다. 

진짜 마음의 준비를해야겠다고. 



작가의 이전글 내가 뭔 죄를 지었길래, 나를 가두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