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 직장인의 기대감에 생기는 균열

사무 인간의 모험

by 작가 글리쌤

‘취업문만 통과하면 살 것 같은데..’ 25년 전 취업 면접 당시의 절실함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듭니다. 인턴, 무기 계약직을 넘어 정규직 관문을 당당히 뚫었음에도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냐는 듯 새로운 생존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사무 팀장.


중간 관리자의 애매하고도 생산성이 점점 떨어지는 업무에 더 이상 목매지 않아도 될 자신만의 업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모든 실무를 관장하고 일의 시작과 끝을 맛보았던 자신감 있던 시절과는 다르게 부쩍 불안한 마음이 들고는 합니다. 나만의 공간, 책상이 생겼다는 마음에 즐거워했던 바로 이곳에서, 처음부터 내 자리가 아니었을 수 있다는 이질감이 퇴직 연한이 가까워 오는 지금 하루가 다르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문화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변화는 안정과 불안감을 동시에 조성했습니다. 산업적으로 노동자 계층과 사무직 직장인 인구 수치 변화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 노동통계국 통계자료에 의하면 1956년 노동자 계층 인구는 2천만 명, 화이트칼라 노동자는 2천7백만 명에 달했습니다. 공장자동화의 여파로 공장 근로자의 숫자는 더디게 늘어난 반면 사무직 노동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막 생겨나기 시작한 노조 관리자와 경영진은 이러한 현상을 이해해야 했고 대비해야 했으며 인사 관리론의 발전을 그 작은 이유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관리가 능사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기나 한 것처럼 노동자를 관리해야 기업 매출이 늘어난다는 개념이 팽배했고 그들을 관리할 사무직군의 증가는 얼핏 자연스러웠습니다. 역사적으로 눈엣가시로 화이트칼라의 등장을 봐왔던 노동직 계층은 노조를 결성하면서도 사무직 직군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노조는 하루 종일 기름때를 묻혀 가며 일을 한 노동직 종사자들을 더 나은 환경에서 먹이고 씻길 생각에 골몰했지만, 사무직 직군 종사자들은 이미 육체적으로는 깨끗하며 씻을 일이 없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노동자들은 경영진에게 숙련된 노동에 대한 처우 개선을 요구했지만 사무직 종사자들은 호봉에 따라 연봉이 올라가거나 실력에 따라 상층부까지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기대했습니다.

블루칼라는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을 내세웠지만 사무직 직장인들은 존엄한 위치에 이미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쟁취하려는 사람들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의 현실과 이상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멋있고 드높은 빌딩, 아늑하고 쾌적한 사무실에 발을 디딘 이후로 그들은 자신의 능력대로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자신감은 그들이 말하는 ‘결’에서도 알 수 있었습니다. 노동계층 종사자들은 자신의 직업을 이야기할 때 직위나 직무가 아닌 산업 전체를 가리켰습니다. ‘철강 관련 일을 해’, ‘조선업 관련 일을 해’ 반면 사무직 직군은 자신의 직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타자기를 다뤄’,

‘경영진 비서업무를 하지’


초기 사무원들은 회사를 옮기더라도 자신이 가꿔 놓은 직무능력을 오롯하게 손에 들고 이직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누군가 면접을 통해 뽑아주고 기회를 부여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능력대로 이 일을 일궈왔으니 오롯한 내 고유의 능력이라고 여겼습니다.


무엇보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의 노동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고수했습니다. 사무직군이 보기에 노조연합의 행보는 위험스러워 보였습니다.

직설화법의 주장과 과도하게 뭉친 노조의 응집력은 사무실에서 보여주기에는 어려운 행태였기 때문이죠. 은밀하고 정치적인 속삭임이 만연한 사무실에서 직설화법은 독이 되어 올 것임을 예견했고 자신들에게 맞는 방법은 아니라고 여겼습니다. 반면 노조가 바라보는 화이트칼라의 행보는 이상한 점 투성이었습니다. 연봉 조정에 대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도 웃음 짓는 모습, 물가 변동에 보호받지 못하는 급여를 받으며, 작은 목소리라도 들리면 이목이 집중되는 고요한 사무실에 살아가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결정적으로 정치적으로 자신들을 보호할 장치가 없는 노동자 계층으로 봤습니다.


미국 사회학자 찰스 라이트 밀스는 1960년대 들어 사무직군 종사자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전에도 그는 이미 자신의 생각을 밝히기도 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이 생겨난 중산계급인 사무직 종사자들은 특징이 있는 것 같음에도 특징이 없는 존재”라고 정의했습니다.


즉 역사적으로 족적을 남길 만큼 뛰어난 업무 역량이 없으며 그렇다고 정치집단을 만들어 세력화할 집단도 아니며 단지 조금 더 강한 세력을 따라가는 성향을 가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 조사 결과를 보더라도 비슷한 맥락을 보입니다. 우선 조사에서 사무직 종사자들에게 설문지를 나눠주며 공장 노동자와 경영진, 사무 계층에게 일정 점수를 매기도록 했습니다. 점수 항목은 신뢰성, 양심성, 의존성 등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사무직 노동자들은 본인을 일반 노동자나 경영진과는 차별화된 존재로 인식했습니다.


다만 경영진에 는 후한 점수를 주었고 노동직 종사자에게는 낮은 점수를 주었습니다. 중간 성향을 가진 것을 스스로 확인한 결과인 셈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저 조직의 안위에 따라 자신의 생각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중간 존재였던 사무직 직군 중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는 집단 또한 생겨났습니다. 한 조직 내에서 생과 사를 함께하는 ‘조직적합인’이 아닌 자신이 키운 능력대로 조직을 옮겨 다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조직이 만들어낸 질서에 반하지 않고 경영진의 그림자를 따라 사다리를 타고 상층부에 입성하기를 바랐던 일반 사무직 직군. 그리고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자신의 직무를 발전시켜 자신이 가진 지식의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하고 싶은 신흥 세력, 새로 탄생한 ‘지식 노동자’의 괴리감. 바로 옆 파티션에 자리 잡은 동료더라도 서로를 다소 이질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한 조직에 충성을 다하고 기력이 소진될 때까지 사무실에서 자아실현을 목표로 하느냐 능력 본위제의 삶에 충실할 것인가 기로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최악의 상황에 놓인 이들은 한 자리에서 일가를 이루지도 못했고 어디론가 떠나 새 둥지를 툴 수도 없는 상황에 직면한 사무 직장인들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시무 직군에 대한 의문과 괴리감을 느끼는 관련 종사자들의 범위는 1970년대 들어 학자, 교수, 노조연합 활동가까지 그 영역을 넓혀가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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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매거진은 <사무인간의 모험> 내용을 개정해 진행되는 요약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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