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는 사람들

사무인간의 모험

by 작가 글리쌤

‘단순 사무 보조’, ‘데이터 자료 입력’, ‘중식 제공’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 올라온 모집공고. 점심식사도 제공하고 단순 자료 입력 업무라면 가뿐히 처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이사무. 그렇게 첫 인턴직 업무를 시작해 나갔습니다. 복사 후 붙여 넣기 신공을 펼치며 엑셀 칸을 채워나갔지만 입력 데이터의 방대함에 혀를 내둘렀습니다. 쓰고 적고 지우고 요약하며 채워 넣기를 반복했습니다.


이정표가 없는 도로를 걷는 느낌, 기승전결이 없는 장편 시를 읽는 느낌, 층위 구조 없이 하루를 통으로 소비하는 느낌. 모니터 속 빈칸은 채워지고 있지만 영혼은 채워지지 않는 기분. 눈도 마주치지 앉은 채 업무분장의 경계인 파티션 너머로 상대방 손과 함께 건네지는 서류뭉치. 얼굴이 보이지 않는 작업 지시자의 손은 무언의 권력 자체였습니다. 자료 입력이 끝나면 생명력이 다해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구겨진 서류들. 비워내야 하고 다시 채워 넣는 이 반복 작업, ‘쓰기’는 사무원의 정체성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한 그들만의 행위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필경사 : 생각이 배제된 글쓰기를 하다

역사적으로 사무원들의 일거리가 많아진 이유는 ‘쓸 일’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고대 수사학자 퀸틸리아누스(Marcus Fabius Quintilianus, 35~95, 고대 로마)는 “소리를 저장하고 있다가 보관하고 있던 물건처럼 읽는 이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문자, 쓰기의 목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회의록을 실시간으로 작성하고 상사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놓칠 새라 실시간 타자기가 되어야 하는 사무원의 모습과 일치합니다. 역사를 관통하는 ‘쓰기 행위’의 사회적 중요성 정도는 사무원의 위치를 가늠할 자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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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필경사의 목표는 확고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표현 그대로 기록하고 복원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복원의 목적은 시간과 공간이 변하더라도 입에서 나온 음성언어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현대 사무직 직장인들이 보고서에 자신의 의견을 소신껏, 심히 담았다가 상사의 질책을 당하는 모습은 고대 필경사 입장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렵고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필경사들은 의견이나 감정은 배제하고 단지 쓴 것을 그대로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지 여부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넣는 것은 더욱 쉽지 않았습니다. 그림을 소리로 표현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고대 그리스 필경사들의 쓰기 작업은 제한적이고 말하기의 보조 작업에 치우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간추려진 약자나 함축된 의미를 담지 않았던 것이죠. 결국 그 당시 적고 쓰는 작업은 말하기와 동등한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아닌 보조매체에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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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무원들은 회의에 참석한 사람 수만큼 서류 복사를 하지만 필경사들은 손으로 일일이 필사를 했습니다. 결국 쓰는 행위는 가능했으나 복사지를 나눠주는 것과 같은 분배 행위는 어려웠습니다. 구술을 적은 내용을 소유하고 싶을 경우 베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글을 베끼는 일은 노에 신분인 필경사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리포트와 논문을 베끼는 일은 혼자 가능하지만 고대 시대 베껴쓰기는 혼자 해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일부 혼자 해내는 필경사 더라도 원문을 소리 내어 읽을 줄 알아야 필사가 가능했습니다.


노예 신분인 필경사들은 원문을 보고 직접 필사하기 어려운 지적 한계를 가졌고 누군가 원본을 읽어주어야 했습니다. 그 당시 필사는 음성언어를, 다시 ‘쓰기’라는 행위로 재생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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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 적는 행위는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기술입니다. A4 한 장을 글로 채우는 것은 일반 직장인은 물론 전업 작가에게도 힘겨운 싸움입니다. 특히 고대 필경사에게 문자를 읽어 주고받아 적도록만 한 것은 ‘쓰는 행위’ 자체가 힘든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매번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글을 새기는 것은 더디고 조심스럽고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표면에 글을 새기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잉크가 제대로 스며들지 않아 문제였습니다. 행여나 구멍이 나기라도 하면 가치가 떨어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지금은 생각하고 쓰는 것을 한 사람의 작가가 해내지만 그 당시에는 ‘생각하는 사람’과 ‘쓰는 사람’이 따로 존재했습니다. 지금도 유명인사의 경우 수행비서 같은 연설문 기록자가 따로 존재하지만 고대 시대에는 쓰기 작업은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하는, 함께 해야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내용을 생산하는 사람은 작가였고, 생산품을 ‘쓰기’로 조립하는 역할은 필경사가 해냈던 것이죠. 조립만 하는 필경사의 생각은 배제됐고 작가의 생각이 조립품을 만들어 내는 중심축이 됐습니다.

작가의 역할을 한 이는 내용을 읽어주는 역할까지 소화했는데 이사무에게 서류만 던져주던 파티션 너머의 손과는 달랐습니다. 고대 그리스, 작가의 역할을 한 이들이 종이에 적는 고된 일까지 떠맡으면 쓰기의 생산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현대에 보이는 칸막이 분업의 전형은 이때부터 움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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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음성언어 지향성은 그 당시 시대상을 반영합니다. 직접 보고 말하는 대면 대화의 높은 비중이 그 당시 음성 토론을 중시했던 사회, 정치 상황을 보여줍니다. 쓰는 행위로 생산된 결과치는 음성 언어가 종결되거나 중단 시 필요한 보조 도구였습니다. 전시에 전달하는 메시지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상대국에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했던 전령사, 이들은 상대국에 전달할 이야기를 머릿속에 담아 저장한 후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우편엽서를 건네고 다시 발길을 되돌리는 것이 아닌, 머릿속의 저장고를 열어 메시지를 읇어야 했습니다. 후일에야 문자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편지가 등장해 전령사 역할을 이어갔습니다.

이사무는 오늘 미팅에 참석할 인원수대로 발표자료를 복사했습니다. 복사기 계기판에 켜진 복사 매수는 ‘10’. 곧 10장의 A4 용지가 출력됐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필사가 가진 치명적인 한계는 시간과 인력의 부족이었습니다. 작가가 구술하는 내용은 단 하나의 사본만 만들 수 있었습니다. 2장, 3장의 사본을 동시 다발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필경사 고용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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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원의 역할을 했던 필경사는 노예 신분이 많아 고용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적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사본이어도 필경사의 작업 노하우에 따라 내용이 들쭉날쭉 달라지는 결과를 낳는 것은 문제였습니다. 결국 1개의 원본에서 똑같은 사본 수 십장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단순 쓰기’ 행위는 스트레스를 내포한 하위 노동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쓰는 주체의 생각과 감정이 없이 단지 쓰는 일에 집중하는 행위 자체를 고급 노동으로 치부하지는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파피루스에서 양피지로 넘어가며 쓰기 작업은 수월해졌지만 필경사가 해야 할 일은 불어났습니다. 모집공고에 내걸린 ‘단순 자료 입력’ 업무의 속성은 시대가 변해도 내비치는 의미는 같습니다. 내가 두드린 타자기 속의 글들이 어디에 쓰이는지 조차 모른 채 손가락 노동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생산적’으로 쓰는 행위는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지만 ‘비생산적’인 쓰기는 자신을 매몰화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워드 프로세서 1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자격증 열풍 시절, 자격증 하나로 취업이 어려운 것은 알았지만 왠지 모를 불안한 마음에 ‘사무직 직장인’이라는 왠지 모를 뿌듯함에 편승하기 위해, 생각 없이 자격증을 땄고 한글 타자를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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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필경사에게 ‘쓰기’는 밥줄이었고 목숨줄이었습니다. 손을 다치거나 작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필경사는 내쳐졌습니다. 하루에도 몇 장씩 찢겨 나가는 보고서와 기획서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는 사무직 직장인이 떠올려지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조직에서 ‘쓰는 행위’ 자체가 가지는 비중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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