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할 수밖에 없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어중간한 삶도 괜찮아

by 작가 글리쌤
“자꾸 눈에 보이는데 어떻게 해요. 부럽기도 하고.”
“들여다보는 건 자유지만 자신의 삶에 투영은 그만두어도 될 때에요”


이젠 정보를 찾는 시대는 저물었고 정보가 사람을 찾아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유튜브 창을 열면 내가 즐겨 보는 영상과 비슷한 콘텐츠를 분석해 보여준다. 집요하게 내 정보를 알아내 친근함을 덧씌워 보내는 스팸메일을 받는 것은 일상이 됐다.


<서치>라는 영화를 보면 친구가 많은 것으로 보였던 딸이, 알면 알수록 온라인상에서 영혼 없는 교감만 나누고 있는 현실 외톨이임을 알게 되는 아버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중국탈.jpg 가면 뒤에서 어떤 일을 겪고 있을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인스타그램 창을 열면 언제 내 친구가 됐는지도 모르는, 멋진 근육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우리 눈을 자극한다. 그 사람의 노력을 인정해줘야 마땅하건대 또 그렇지 못하고 나의 빈곤한 팔뚝을 측은히 여기곤 한다. 그들의 인생을 은연중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의 근육이 내 근육이 아니듯 그 사람의 인생도 내 인생이 아님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사람은 대부분 아래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위를 보고 분노를 외친다. 이러한 것이 반복될수록 자신의 삶에 집중도는 현저히 낮아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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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사람, 본인이 여기 있는데 왜 이렇게 주변만 둘러보고 있을까. 멋진 곳에서 멋진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모습... 그들이 사진상에는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구멍 뚫린 반바지에 삼선 슬리퍼를 신은 채 집안에서 뒹굴고 있는 건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몇 장의 요약된 삶을 보고 그들의 삶을 추앙할 필요는 없다. 내 삶의 주인공까진 아니어도 다른 사람의 삶에 보조 연출자로 출연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무너짐의 미학> 연재는 마냥 포기하지도, 마냥 열심히 살지도 않는, 어중간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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