꽈리고추볶음은 거의 일 년 내내 나의 냉장고에 서식하는 반찬이다. 매콤하면서 풋내 나는 꽈리고추를 간장으로 조리듯이 볶아 놓으면 달달 짭조름하니 흰 밥에 물 말아 한 그릇 뚝딱이다. 나는 이렇게도 한 끼 때울 수 있는데 식탁에 꽈리고추볶음과 흰 밥 한 공기 놓고 밥 먹으라고 부르면 아들이 정색하고 나를 쳐다볼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식탁의 주연배우는 될 수 없는데 그렇다고 만드는데 손이 안 가는 반찬도 아니다.
하나하나 꼭지를 따고 포크로 폭폭 찔러 구멍을 내야 양념이 안쪽까지 잘 스며든다. 찌르고 있다 보니 우연히 포크가 웃고 있어서 기분이 묘해졌다가 '뭐지'하는 생각에 피식 웃는다.
생각해 보니 만들어 놓고 나만 먹는 것 같기도 하지만 뭐 어떠랴. 원래 우리 집에서는 내가 먹고 싶은걸 주로 한다. 주방 권력자가 좋아하니 자주 하는 반찬인데 이상하게도 친정엄마가 해주는 맛이 안 난다. 가끔 엄마가 반찬 뭐 해주리하고 전화를 하시면 늘 꽈리고추볶음을 이야기하는데, 나중에 내 아들도 '꽈리고추볶음은 우리 엄마가 잘하는데'라고 생각해 줄까.
아! 나만 먹는 반찬이지. 아! 딸이 아니고 아들이지. 아! 꽈리고추볶음으로 기억되는 엄마이고 싶진 않다.
참나물 무침
참 맛있어서 참나물
"엄마, 이 나물 뭐야? 맛있어!"
"촤~암 나물이야."
"뭐?"
"참 맛있어서 참나물. 우리말에 맛있고 진실되고 좋은 건 참이 들어가는 것들이 있어."
"아! 참기름! 참말로! 참하다!...... 참수형?"
"아니, 참수형은 아니고."
삼국지 그만 읽으라고 할 수도 없고.
부추 겉절이
겉절이엔 액젓을 넣어보세요
부추 한 단을 사서 다 먹기가 쉽지 않다. 부추전도 해 먹고 된장찌개에도 넣고 둘째 이유식에도 쫑쫑 썰어 넣었지만 여전히 한 줌 남은 부추. 냉장고에서 자라나는 것일까. 겉절이로 마무리를 해본다. 역시나 부추무침도 씻는 것부터. 귀찮으니 한꺼번에 훌훌 씻으려고 마음먹고 시작하지만 어느새 허리 숙여 한 올 한 올 씻고 있다.
식초를 넣을 때도 있고 고춧가루를 넣을 때도, 안 넣을 때도 있는데 항상 빠지지 않는 양념은 액젓. 짠맛에는 실로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소금, 액젓, 새우젓, 참치액, 집간장, 굴소스 등등 나트륨의 변신은 무한하다. 나물 무침에는 집간장과 액젓의 콜라보가 잘 어울린다. 짜디 짠 액젓을 한 통사면서 유통기한 내에 다 먹을 수 있을까 의심하지만 어느새 다 먹고 다시 장바구니에 담을 때면 약간의 죄책감이 든다. 한 통을 다 먹는 동안 도대체 얼마나 짜게 먹은 거야.
식비 몸빵
줄어드는 식비 늘어나는 노동력
요즘 거의 집밥을 해 먹는다. 외식도 배달음식도 자주 먹지만, 휴직을 하고 줄일 수 있는 지출의 최전선이 식비이다 보니 도전하게 된 한 달 식비 50만 원 프로젝트. 삼천 원 야채 한 봉지 사서 무쳐먹고, 데쳐먹고, 볶아먹고 하다 보니 식비가 줄긴 주는데 함정이 있다. 식비 몸빵.
[몸빵 : 어떤 일에 대하여 몸으로 때우는 일. 또는 그런 사람.]
한 달 식비가 30만 원이 줄었다는 것은 내 노동력으로 30만 원을 때웠다는 이야기다. 부추를 한 올 한 올 씻으며 숙여지는 허리, 꽈리고추꼭지를 똑똑 따고포크로 푹푹 찌르며 드는 생각, 조금 더 넣을까 말까를 매우 신중하게 고심하며 방울방울 떨어뜨리는 액젓까지 다 주방권력자의 몸빵이다.
수고롭다. 귀찮고 고단하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밥은 계속된다.
깨끗하고 좋은 재료들로 정성 들여 한 반찬에 담겨지는 마음을 가족들이 느껴주길 바라며.
씻고 데쳐서 조물조물 무쳐주는 참나물이 촴 맛있다며 한 접시 비우는 아들이 예뻐서.
꽈리고추살인마라도 볶다 보면 엄마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져서.
이번 주 집밥은 수고롭고도 고생스러운 밑반찬으로 때워보고 싶지만, 아들의 정색이 뜨끔해서 매일 하고야 마는 고민의 늪에 다시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