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세습'
마이클 센델 교수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우리가 얻은 결과는 꼭 우리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다라는 요지를 담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읽은 책인 '엘리트 세습'은 마이클 센델 교수의 논지와 같은 맥락에 있는 것도 있지만 다른 부분을 파고들고 있다.
책의 한 부분을 가져오면 '한 때 한가한 생활을 영위했던 부유층은 중산층과 대조적으로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한다' 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하루에 10시간 이상 근무해야 하는 미국 대기업의 직장인을 소개하기도 하고, 1960년대 미국의 변호사들이 1년 동안 일했던 시간 청구서와 2000년 미국 변호사의 연 시간 청구서를 비교하여 소개한다
책의 영문 원제는 'Meritocracy Trap' 으로 직역하면 능력주의의 덫 이라는 뜻이다. 즉, 엘리트들이 그 어떤 사회 클래스보다 더 열심히 살고,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그들의 얻은 댓가 역시 정당하다는 것이 현재 엘리트들의 생각이며, 엘리트들은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자신들의 자녀에 '세습'시키고 싶어한다.
누구보다도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권리'? 라는 것이 좋은 걸까? 누구나 일을 적게 하고 같은 급여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은 것이 아닐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는 "능력주의는 중간숙련 직업을 내리누를 뿐 아니라 암담한 직업에도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라고 언급했다.
곱씹어보면 앞으로는 소수의 사람만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라는 맥락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AI가 뺏어간다고 한다. 즉,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아닌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AI나 기계에게 일자리를 뺏기는게 아닐까?
요즘 회사에도 보면 업무 자동화라고 해서 파이썬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용해서 하루가 걸리는 엑셀 작업을 1분만에 끝내기도 한다.
이렇듯 반복적인 업무는 점점 컴퓨터와 기계에게 넘어감에 따라 고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업무에 대한 보상은 과거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책은 우리의 소득의 불평등은 세습된 자본이 아니라 소득 때문이라고 언급한다.
책의 그 부분을 가져오면 "자본이 경제 생활을 지배하는 경향이 심화한다는 불만이 쏟아지지만 실제로는 증가한 자본 가운데 2/3 에서 3/4이 엘리트의 근로소득 증가분(주: 상위 근로소득자의 막대한 급여)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경제 불평등이 심화된 원인은 노동에서 자본으로의 소득 이전 때문이라기 보다는 중산층 직업에서 상위 직업으로의 소득 이전 때문이다" 라는 부분이다
토마스 피케티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도 있을텐데, 몇 년전에 굉장히 소위 Hot 했던 사람이다.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r(자본소득 증가율) > g(근로소득 증가율)
위의 공식 때문인데, 그냥 편하게 얘기하면 아무리 열심히 대기업에서 일해도 건물주를 이길 수 없다 정도로 풀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많은 분들이 공감할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의 작가는 그것이 아니라 근로소득의 증가분 때문에 경제불평등이 심화 되었다고 주장하며 피케티와 다른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정말 그런 것일까?
미국과 우리나라의 고위 경영진에 대한 급여 보상수준이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야구단이 있는 기업의 사장이라도 연봉이 4억~6억 수준일 수 있다. 물론 등기이사는 제외한다. 하지만 미국이라면 그 정도 위치의 CEO라면 연봉이 '0'이 하나 더 붙어 있다.
잘 나가는 헤지펀드나 투자은행-책에서는 계속 골드만 삭스가 언급된다-의 고위 간부라면 100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이 정도면 근로 소득으로 충분히 작은 규모의 자산가들을 압도할 수 있다고 말해봄직 하다.
그렇다면 골드만 삭스의 간부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 길은 소수의 사람들만 발을 들일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열려있는 그 길 마저도 치열한 경쟁을 거쳐야만 완주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 예시로, 책에서는 한 사람이 골드만 삭스로 입사하기 위해서 어떤 유치원을 들어가야 하는지, 그 유치원을 들어가기 위한 경쟁률을 설명한다.
유치원 입학률이 30%에 불과한데 그 유치원을 거쳐야 Top 아이비리그 학교(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등)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유치원 입학 신청 항목엔 부모의 직업과 부모의 소득 기입 항목이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아이비리그를 들어가도 끝난게 아니다. 계속 경쟁을 하며 최상위권 학점을 얻어야만 고소득 직종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만 한다.
책에 나와있는 1960년대 예일 대학교 입학을 위해 어떻게 했는 지 묘사하는 장면이 언급되는데, 읽어보면 현대의 엘리트들이 자부심을 왜 가지는 지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다.
이렇듯 치열한 경쟁을 거쳐서 얻은 자리이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어마어마한 경제적 보상은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라고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 이대로가 괜찮을까?
그렇지 않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엘리트 계급이 되기 위해 들어간 엘리트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새로운 계급사회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면, 예일 대학교는 유색인종 학생을 수용하는데는 아무 문제 없지만, 직원과 대학원생들이 노조를 결성하는데는 극심한 반대를 한다는 것이다.
인종이나 출신으로 계급을 나누는 시대는 건너갔고, 돈에 의해 계급을 나누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종과 국적으로 계급을 나누는 시대에서는 사람들은 불공정함을 깨닫고, 저항하고 공정함을 얻어냈다면,
지금은 능력주의라는-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댓가- 방어막이 불공정함을 가려주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수긍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 능력주의에 대한 허상을 걷어내지 않는다면 인류는 다시 한 번 '공식적인' 계급 사회로 진입할 것이며, 이 계급은 예전 중세시대만큼 오래갈 수 있다라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작가는 교육 기회의 공평성이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보고 있다. 소득분포의 하위 66%에 해당하는 가정 출신을 사립 고등학교와 상위 대학 정원의 절반으로 채워야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해당 교육 기관에 세금 면제 혜택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능할지는 우리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경쟁을 통해 그 학교를 들어간 엘리트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며 불공평하다고 말할 것이니까